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중흥산성은 백운산의 한 지맥이 남서쪽으로 내려와 옥용면에 닿았는데 이곳 산중터리에 중흥사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이 석탑은 암자경내에 있는데 원래는 석탑과 함께 쌍사자석등이 있었으나 석등(국보 제103호)은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치 되었다. 이중기단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신라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따랐고 지채석위 상면에 몰딩이 있어 하층기단 하대석을 받게 되는 특수양식을 가지고 있다. 하대석과 중석은 일석으로 붙여 4매 장석으로 구성하였는데 중석 각면에 우주와 탱주 삼주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갑석은 매우 두껍고 상면에 약간의 경사가 있어 우 동이 뚜렷하며 중앙에 각형과 호형의 몰딩이 있다. 상흥기닽 중석에는 우주가 표시되고 탱주 일주로서 2구로 구분한 다음 전면에는 인왕상 양구, 양측에는 사천왕립상, 후면에는 보살상 두구가 양각 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이들 조상의 배치에도 유의한 듯 하다. 갑 석면에는 각각 우각에 2공과 중앙에 3공이 있어 이곳에는 당초 다른 부가물이 있었던 것 같다. 밑에는 부연이 달리고 상면 경사에 각형 2단의 몰딩이 있어 탑신을 받았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일석으로 초층옥신에는 4우에 굵직한 우주가 있고 각면에는 앙연부연의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여래상이 1구씩 있어 사방불을 이루었다. 이층이상의 옥신은 체감되었고 4우주만이 모각되었다. 옥개석 받침은 각층 3단이고 추녀밑은 수평이다. 옥상에는 우동이 뻗어 전각에 이르러 반전이 보이고 전각 단면에는 풍령공(風鈴孔)이 있으며 옥정에는 탑신받침 1단이 마련되었다. 상륜부에는 노반만을 남기고 그 위에 구형 석재가 얹혀있다. 이 탑은 양질의 화강암을 택했음인지 보유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탑신의 4불을 조각하고 그 밑에 인왕, 사전왕, 보살 등 권속을 질 서있게 배치한 것을 보면 상당한 배려가 짐작된다. 이 석탑의 조성은 신라말기에 해당될 것이나 이와같은 우수작이 나왔음은 매우 주목된다고 하겠다.
중흥산성은 백운산의 한 지맥이 남서쪽으로 내려와 옥용면에 닿았는데 이곳 산중터리에 중흥사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이 석탑은 암자경내에 있는데 원래는 석탑과 함께 쌍사자석등이 있었으나 석등(국보 제103호)은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치 되었다. 이중기단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신라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따랐고 지채석위 상면에 몰딩이 있어 하층기단 하대석을 받게 되는 특수양식을 가지고 있다. 하대석과 중석은 일석으로 붙여 4매 장석으로 구성하였는데 중석 각면에 우주와 탱주 삼주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갑석은 매우 두껍고 상면에 약간의 경사가 있어 우 동이 뚜렷하며 중앙에 각형과 호형의 몰딩이 있다. 상흥기닽 중석에는 우주가 표시되고 탱주 일주로서 2구로 구분한 다음 전면에는 인왕상 양구, 양측에는 사천왕립상, 후면에는 보살상 두구가 양각 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이들 조상의 배치에도 유의한 듯 하다. 갑 석면에는 각각 우각에 2공과 중앙에 3공이 있어 이곳에는 당초 다른 부가물이 있었던 것 같다. 밑에는 부연이 달리고 상면 경사에 각형 2단의 몰딩이 있어 탑신을 받았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일석으로 초층옥신에는 4우에 굵직한 우주가 있고 각면에는 앙연부연의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여래상이 1구씩 있어 사방불을 이루었다. 이층이상의 옥신은 체감되었고 4우주만이 모각되었다. 옥개석 받침은 각층 3단이고 추녀밑은 수평이다. 옥상에는 우동이 뻗어 전각에 이르러 반전이 보이고 전각 단면에는 풍령공(風鈴孔)이 있으며 옥정에는 탑신받침 1단이 마련되었다. 상륜부에는 노반만을 남기고 그 위에 구형 석재가 얹혀있다. 이 탑은 양질의 화강암을 택했음인지 보유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탑신의 4불을 조각하고 그 밑에 인왕, 사전왕, 보살 등 권속을 질 서있게 배치한 것을 보면 상당한 배려가 짐작된다. 이 석탑의 조성은 신라말기에 해당될 것이나 이와같은 우수작이 나왔음은 매우 주목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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