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533-1
이 석탑은 원래 2층 옥개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며 기단부도 하대중석 두개가 유실되는 등 그 훼손이 심한 상태였으나 1986년 복원공사를 마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 당행하게도 3층 탑신과 4층 옥개석 및 4층 탑신이 인근마을인 춘양리에서 수습되어 복원과정에서 신재로 삽입되는 탑재를 실측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편 이 탑의 복원을 위한 해체과정에서 1009년, 즉 고려 목종 12년(통화 27년)이라는 절대 연대가 명기된 탑지와 사리함이 발견되어 고려 시대 초반기의 석탑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석탑은 원래 2층 옥개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며 기단부도 하대중석 두개가 유실되는 등 그 훼손이 심한 상태였으나 1986년 복원공사를 마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 당행하게도 3층 탑신과 4층 옥개석 및 4층 탑신이 인근마을인 춘양리에서 수습되어 복원과정에서 신재로 삽입되는 탑재를 실측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편 이 탑의 복원을 위한 해체과정에서 1009년, 즉 고려 목종 12년(통화 27년)이라는 절대 연대가 명기된 탑지와 사리함이 발견되어 고려 시대 초반기의 석탑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석탑은 2층 기단인 5층 석탑으로 탑신과 옥개석이 각 1석식이다. 기단부를 보면 지대석은 4매 장대석으로 짜고 역시 하대 중석 도 4매 장대석으로 결구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각면의 양 우주와 중앙의 탱주를 산자형으로 모각하였다는 점이다. 하대 갑석은 2매 판석으로 결구하였으며 하면은 수평이고 상면은 약간 경사를 주어 중앙에서 각형과 호형이 중첩된 2단 괴임을 각출하였다. 상흥 기 단 중석은 4매로 결구하고 각 면에 양우주를 모각하고 중앙에는 탱주를 목각하였다. 갑석은 역시 2매 판석으로 결구하였으며 하면 에는 부연이 없고 상면은 가벼운 경사를 주어 탑신을 받기 위한 각호각형의 3단 괴임을 나타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 1석식인데 1층 탑신은 각 면에 우주 를 표출하고 다른 조식은 보이지 않는다. 2층 이상부터는 체감을 이루어 5층가지 동일한 수법이다. 옥개석은 비교적 엷은 펀으로 처마는 하면에서 수평을 이루고 상면의 낙수면은 평박하며 우동은 밋밋한게 내려오다 합각의 네 귀퉁이에서 가벼운 반전을 보였다. 받침은 1층에서 3층까지는 4단이며 4 ~ 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각 층 옥개석 정상에는 1단의 괴임대를 조출하여 그 윗 층의 탑신 을 받고 있는데, 1층에서는 음각으로 처리하여 형식화 되었으며, 2 층부터는 얕은 1단의 괴임을 보였다. 상륜은 모두 신재로 보충하 였는데 노반과 복발·보주를 얹었다. 조성 연대는 1009년(목종 12년)으로 당시 영암의 호장 박문이 조정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석탑을 건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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