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조성면 325
기단부의 중대석 이하는 지하에 매몰되어 있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단층 기단으로 추정된다. 지상에 나타난 양식을 살펴보면 기당 면석을 4매 판석으로 하고 각면의 양 귀퉁이에 우주를 모각하였으며 중앙에 탱주를 각출하여 통식을 따랐다. 갑석은 4매석으로 짰으며 약간 평박한편으로 하면은 수평인데 부연이 보이고 상면은 탑신을 받는 중앙으로 오르면서 가벼운 경사를 주었고 각호 각형의 3단의 몰딩을 주어 1층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 각 1석식인데, 1층 탑신은 각면에 양우주 를 세웠으며 역시 1 ~ 3층에서도 같은 양식을 보였다. 그러나 탑신의 높이는 2층 내지 3층에서 1층 탑신의 절반도 안되게 하여 급격한 체감율을 보였는데 이는 상층으로 올라갈 수록 고준해 보이는 탑의 안정성을 기하려는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 하겠다. 옥개석은 하면에 수평을 이루고 층급 받침은 4단이다. 상면은 낙 수면이 경사를 이루었으며 우동 마루가 뚜렷하고 전각에 이르러서 는 경미한 반전을 이루었다. 또한 옥개석 상면 중앙에 각형 2단 괴임을 표출하였는데 이러한 수법은 2층이나 3층의 옥개석에서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륜은 노반과 부연을 한 석재가 올려져 있다. 이 석탑은 기단부 하부구조가 지면에 묻혀 정확한 양식을 확인할 수 없으나 전체적 인 탑의 기법이 매우 정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아담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옥개석의 낙수면이나 층급 받침의 균형을 이룬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특히 낙수면의 밋밋하고 안정 된 전각의 급하지 않은 반전에서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주고 있 다. 이 석탑은 당초 지정조사에서 그 조성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였으나 최근 이 석탑에 대한 정밀 조사에서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 됐음이 밝혀져 주목이 되고 있다. 현재 이 탑은 개인소유의 답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으로부터 그 리 멀지 않은 벌교 징광사(폐사)의 말사였다는 구전이 전해 내려 오고 있으나 확실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기단부의 중대석 이하는 지하에 매몰되어 있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단층 기단으로 추정된다. 지상에 나타난 양식을 살펴보면 기당 면석을 4매 판석으로 하고 각면의 양 귀퉁이에 우주를 모각하였으며 중앙에 탱주를 각출하여 통식을 따랐다. 갑석은 4매석으로 짰으며 약간 평박한편으로 하면은 수평인데 부연이 보이고 상면은 탑신을 받는 중앙으로 오르면서 가벼운 경사를 주었고 각호 각형의 3단의 몰딩을 주어 1층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 각 1석식인데, 1층 탑신은 각면에 양우주 를 세웠으며 역시 1 ~ 3층에서도 같은 양식을 보였다. 그러나 탑신의 높이는 2층 내지 3층에서 1층 탑신의 절반도 안되게 하여 급격한 체감율을 보였는데 이는 상층으로 올라갈 수록 고준해 보이는 탑의 안정성을 기하려는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 하겠다. 옥개석은 하면에 수평을 이루고 층급 받침은 4단이다. 상면은 낙 수면이 경사를 이루었으며 우동 마루가 뚜렷하고 전각에 이르러서 는 경미한 반전을 이루었다. 또한 옥개석 상면 중앙에 각형 2단 괴임을 표출하였는데 이러한 수법은 2층이나 3층의 옥개석에서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륜은 노반과 부연을 한 석재가 올려져 있다. 이 석탑은 기단부 하부구조가 지면에 묻혀 정확한 양식을 확인할 수 없으나 전체적 인 탑의 기법이 매우 정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아담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옥개석의 낙수면이나 층급 받침의 균형을 이룬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특히 낙수면의 밋밋하고 안정 된 전각의 급하지 않은 반전에서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주고 있 다. 이 석탑은 당초 지정조사에서 그 조성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였으나 최근 이 석탑에 대한 정밀 조사에서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 됐음이 밝혀져 주목이 되고 있다. 현재 이 탑은 개인소유의 답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으로부터 그 리 멀지 않은 벌교 징광사(폐사)의 말사였다는 구전이 전해 내려 오고 있으나 확실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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