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
정면, 측면 3칸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
잡석으로 쌓은 높직한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운 다음 4출목외 3출목의 포작을 짜 올렸다.
외부첨차는 위로 가볍게 치켜올라간 앙서(仰舌)모양으로 조선 중ㆍ후기 다포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천장은 우물반자를 가설하여 가구를 가렸다. 특히 전면기둥의 초석에 다소 둔하게 새겨진 연꽃잎, 거북, 게 등의 솟을 새김이 단연 돋보인다.
미황사는 해남읍에서 완도로 가는 길을 따라 서남쪽 해변으로 약 20km쯤 떨어진 달마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약 600 고지되는 산세 수려하고 기암절벽을 이룬 이 곳 달마산은 병풍처럼 미황사를 둘러싸고 있으며 주위 경관이 빼어나 호남의 금강산이라 일컫는다.
기둥은 배흘림이 완연한 원주를 세우고 그 위에 횡대를 올렸는데 특히 첨차살미의 쇠서를 보면 강직하게 내려뻗지 않고 호형을 이루면서 위로 구부러져 올라가면서 선은 점차로 연약해진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또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중앙 복판에는 범자를 선명하게 그려 넣었다. 창호는 중앙간은 사분합이며 양 1간은 3분합으로 모두 빗살문으로 되어있다. 처마는 겹처마로 부연이 있고 처마의 곡선 또한 완만하면서 우동 마루의 전각에서는 약간 반전하여 매우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1982년 옥개부 이상을 해체 복원하면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정유재란 이후의 복원 내력을 알 수 있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된 후, 제일창은 1601년에 이루어졌으며, 제이창은 효종 10년(1659) 비구성간이 화주가 도어 2년여에 걸쳐 번와보수를 하였고, 삼창은 그로부터 1백 여년이 흐른 영조 29년 (1753) 겨울 보길도에서 목재와 초석을 새로 치목치석하여 대흥사 와 주위 여러 마을 사람들의 협조로 해남북곡으로 운반해와 그 다음 해인 4월에 대웅전과 나한전을 복원하였다. 위 내용에 의하면 현 건물은 영조 30년(1754)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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