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274
무위사소재. 선각대사 형미(逈微)의 탑비. 946년에 건립. 높이 2.35㎝. 이 비는 귀부와 이수, 비신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선각대사는 신라말기의 명승으로 체징선사(體澄禪師)를 사사하고 당나라에 건너가서 14년만에 돌아와 무위사에 8년간 머물렀다. 918년에 속년(俗年) 54, 승랍 35세로 입적한 지 28년만에 세워진 것인데 비제(碑題)는 '고려국고무위잡사 선각대사 편광탑비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비문은 최언위(崔彦僞)가 짓고 유훈율(柳勳律)이 해서로 썼다.
대사의 법휘는 형미, 속성은 최씨이다. 신라 헌강황 8년(882년) 18세에 구례 화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그 후 가지산 보리사 구산선문의 태두인 보조선사에게 참알하여 선법을 배운 뒤에 27세에 입당 운거도응의 신인을 받고 효공왕 9년(905)에 귀국하여 강진 무위갑사에 머무르니 이때가 대사의 41세 때이다.
다시 비문은 「속년50에 승랍 35였다」라 하였으니 무위갑사에 주석한지 13년 후에 시적하였다. 또 말미는「개운 3년 병오년 5월 경인삭 29일 무오에 세웠다」라 기록되어 있다. 입석 년인 개운 3년은 고려 정종 원년(946)으로 대사의 입멸 후 28년이 되는 해이다.
비는 극락보전 서방 약 3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축 원담내에 남향을 하고 있다. 귀부와 비좌, 비신에 이수를 구비한 전통적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머리부분은 양각을 뚜렷이 조각한 용두로 함주 구강은 투조되어 있다.
귀배는 육각갑문을 양각, 비조 전후 2면에 는 보운문, 양측면에는 안상을 각각 양, 음각하였다.
이수는 복판 연화문을 장식하였고, 주위에는 반결용운문과 반결쌍용문으로 조출하였다.
각부의 조각 기법는 당대의 다른 비석에 비해 사실성의 경향을 띠었으며, 특히 조각 예술로서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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