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대웅전은 다포계(多包系)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흔히들 조선초기의 불전으로 알려져 왔지만 1363년 공민왕 피난시절에 왕실적 차원에서 건립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면 현존하는 다포계건물로서는 가장 오래된 예가 된다.
자연석 허튼층 쌓기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정면에는 세살분합문을 모두 달고 측면 전 후 협칸에 정자살 2합문을, 그리고 후면 3칸에도 널문과 골판문(骨板門)을 달았다. 특히 전면에는 양협칸 중앙에 문선대를 세워 그 양편으로 2분합을 각각 단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문틀 중간에 문설주를 세우는 방식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등 오래된 건물형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특히 수덕사 대웅전이나 무위사 극락전 후면 두짝 널문도 이와같이 중앙대에 문선을 두고 그 양편에 널문 안짝씩을 달았는데 조선중기 이후로는 보기 힘든 기법이다.
이 건물은 기둥높이와 기둥간격의 비가 1.43:1로써 한 칸의 비례가 옆으로 길게되어 있어 건물비가 1.1:1인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에 수직적인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하여 수평적인 느낌이 강한 집이다. 그러므로 안정감이 크다.
이 건물의 공포는 내외 2출목으로 안과 밖이 동일하다.
대부분의 다포계는 바깥보다 안의 출목수가 커서 그 높은 차이를 이용하여 천장을 몇단으로 나누어 설치하여 내부공간의 수직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이 건물은 외부의 벽면과 내부 천장의 수평면의 높이가 같다.
건물의 내부바닥과 천장은 우물마루와 우물반자를 짰고, 건물내에서 시선을 끌게 하는 것은 오래된 단청의 문양과 그 색이다.
기둥과 보의 계풍(界風)에는 용을 화려하게 그렸는데 아직도 금색(金色)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초에는 찬란한 금은색을 발하였을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반자는 우물반자 중 가장 고급스런 소란반자이고 중앙칸 불단 위에는 감입천장(嵌入天障)을 만들어 보개를 삼았다.
반자 속에 있는 마루대공은 동자대공을 세웠는데 그 밑받침으로 산(山)자형의 받침화반은 극락전의 타봉형 화반에서 발전된 형식으로 볼 수 있어 이 건물이 다포계 중에서도 신라계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믿어진다.
내부천장에는 닫집을 두지않는 우물천장을 만들어 보개를 짜서 닫집을 대신하였다(함입형 닫집). 이러한 닫집은 극히 소수의 예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무위사 극락전과 장곡사 하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
불단의 불좌 아래의 수미단에는 모란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아랫쪽에는 연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36판 부조하여 불단을 최고의 경지로 조성하고 있다. 모란꽃이 등장하는 시기를 고려말부터라는 주장과 함께 닫집에 그려진 용의 발톱 5개는 강력한 반원사상을 썼던 공민왕대의 주체성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한국용은 3개의 발톱) 대웅전의 형상이나 공포의 구성수법, 대웅전 내부공간 조성의 방법 등이 고려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다고, 대웅전은 고려말의 건물일 가능성을 강렬히 뒷받침하고 있다.
다포계건축이 주심포계와 다른 점
첫째, 주심포형식이 공포를 건물의 앞뒷면에만 배열하는 것과는 달리 다포계 건물은 건물의 네 벽 모두에 배열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는 팔작지붕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제외한 초기 주심포 건물의 대부분이 맞배지붕인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둘째, 내부공간 역시 큰 차이가 있다. 주심포계건물은 건축재를 그대로 노출시켜 구조미를 주조로 한 내부를 이룬다. 건축재가 비교적 단순하고 공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복잡한 구조체를 갖는 다포계는 지붕틀 아래에 천장을 달아 건축재를 감추고 대신 우물천장의 격자 문양과 장식들로 내부를 꾸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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