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 책은 범망경로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 제< 第 >10의 상< 上 >, 하< 下 >권중 하< 下 >권에 해당한다. 내용은 보살이 지녀야 하는 10종의 무거운 계< 戒 >(십중대계< 十重大戒 >)와 48종의 경범죄< 輕犯罪 >에 해당하는 계< 戒 >(사십팔경계< 四十八輕戒 >)를 설< 說 >한 것이며, 대승불교< 大乘佛敎 >의 기본계율서< 基本戒律書 >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이 판본< 版本 >에는 충렬왕< 忠烈王 >32년< 年 >(1306)에 쓴 원< 元 >의 고승 < 高僧 > 소경< 紹瓊 >의 후서< 後序 >가 붙어 있다. 소경< 紹瓊 >은 고려< 高麗 > 충렬왕< 忠烈王 >30년< 年 >(1304) 7월< 月 >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었다. 이때 왕< 王 >이 승지< 承旨 > 안우기< 安于器 >를 교외< 郊外 >에 보내어 그를 영접하였다는 기록을 비롯하여, 왕이 군신< 群臣 >을 거느리고 예복< 禮服 >을 갖추고 수령궁< 壽寧宮 >에 맞이하여 그의 설선< 說禪 >을 들었다는 기록(고려사< 高麗史 > 권제< 卷第 >32, 충렬왕< 忠烈王 > 30년< 年 > 7월< 月 >, 8월조< 月條 >), 궁중에서 화불< 畵佛 >에 점안< 點眼 >한 다음 화엄경< 華嚴經 >을 전독< 轉讀 >하고 왕< 王 >과 왕비< 王妃 >가 보살계< 菩薩戒 >를 받았다는 기록(고려사렬전< 高麗史列傳 > 권제< 卷第 >17 한희유조< 韓希愈條 >), 충렬왕< 忠烈王 >때 지첨의부사< 知僉議府事 > 권단< 權단 >이 그에게 머리를 깎고 출가< 出家 >했다는 기록< 記錄 >(고려사렬전< 高麗史列傳 > 권제< 卷第 >20 권단조< 權단條 >)등이 전해지는 원< 元 >나라의 고승이다. 그는 고려시대 고승 혜감국사< 慧鑑國師 > 만항< 萬恒 >, 보감국사< 寶鑑國師 > 혼구< 混丘 >와 친밀한 교류가 있었던 몽산덕리< 蒙山德異 >의 제자< 弟子 >이기도 하다.
이 판본< 版本 >의 본문< 本文 >은 달필의 송설체를 잘 새겼지만 뒤의 소경< 紹瓊 > 후서< 後序 >는 번각의 흔적이 보이므로 고려말기< 高麗末期 > 무렵의 간본< 刊本 >으로 추정된다. 이책은 고려시대 원나라와 불교를 통한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범망경로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 제< 第 >10의 상< 上 >, 하< 下 >권중 하< 下 >권에 해당한다. 내용은 보살이 지녀야 하는 10종의 무거운 계< 戒 >(십중대계< 十重大戒 >)와 48종의 경범죄< 輕犯罪 >에 해당하는 계< 戒 >(사십팔경계< 四十八輕戒 >)를 설< 說 >한 것이며, 대승불교< 大乘佛敎 >의 기본계율서< 基本戒律書 >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이 판본< 版本 >에는 충렬왕< 忠烈王 >32년< 年 >(1306)에 쓴 원< 元 >의 고승 < 高僧 > 소경< 紹瓊 >의 후서< 後序 >가 붙어 있다. 소경< 紹瓊 >은 고려< 高麗 > 충렬왕< 忠烈王 >30년< 年 >(1304) 7월< 月 >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었다. 이때 왕< 王 >이 승지< 承旨 > 안우기< 安于器 >를 교외< 郊外 >에 보내어 그를 영접하였다는 기록을 비롯하여, 왕이 군신< 群臣 >을 거느리고 예복< 禮服 >을 갖추고 수령궁< 壽寧宮 >에 맞이하여 그의 설선< 說禪 >을 들었다는 기록(고려사< 高麗史 > 권제< 卷第 >32, 충렬왕< 忠烈王 > 30년< 年 > 7월< 月 >, 8월조< 月條 >), 궁중에서 화불< 畵佛 >에 점안< 點眼 >한 다음 화엄경< 華嚴經 >을 전독< 轉讀 >하고 왕< 王 >과 왕비< 王妃 >가 보살계< 菩薩戒 >를 받았다는 기록(고려사렬전< 高麗史列傳 > 권제< 卷第 >17 한희유조< 韓希愈條 >), 충렬왕< 忠烈王 >때 지첨의부사< 知僉議府事 > 권단< 權단 >이 그에게 머리를 깎고 출가< 出家 >했다는 기록< 記錄 >(고려사렬전< 高麗史列傳 > 권제< 卷第 >20 권단조< 權단條 >)등이 전해지는 원< 元 >나라의 고승이다. 그는 고려시대 고승 혜감국사< 慧鑑國師 > 만항< 萬恒 >, 보감국사< 寶鑑國師 > 혼구< 混丘 >와 친밀한 교류가 있었던 몽산덕리< 蒙山德異 >의 제자< 弟子 >이기도 하다.
이 판본< 版本 >의 본문< 本文 >은 달필의 송설체를 잘 새겼지만 뒤의 소경< 紹瓊 > 후서< 後序 >는 번각의 흔적이 보이므로 고려말기< 高麗末期 > 무렵의 간본< 刊本 >으로 추정된다. 이책은 고려시대 원나라와 불교를 통한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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