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4각에 가까운 원추형 바위가 있다. 여기 바위 전면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바위 정상에는 동자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동면에는 좌상 1구가 있고 북면에도 좌상 1구가 있는데 합장하고 있다. 남면에는 4구의 입불이 있는데 모두 수법이 비슷하다. 또 서면에는 원래 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지만 일제 시에 광부들이 떼어냈다고 한다. 이들 불상들은 모두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명확하며 얼굴의 세부 는 뚜렷하지는 않으나 윤곽이 분명하고 우아한 편이다. 그러나 체 구는 빈약하고 굴곡도 표현되지 않았으며 신체의 구분, 의문 등 선 처리에 있어서도 너무 도식적이다. 좌상, 입상이 모두 비슷한 크기이며 발아래에는 1단의 돌출부를 마련하여 자연태좌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7불이지만 없어진 서면 불상까지 합하면 9불이 된다. 원추형 비슷한 4면석에 다수의 불상이 비스듬하게 조각된 예는 극 히 드물며 또한 이렇게 4면 불을 조성한 예 역시 우리 나라의 귀중한 불상의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 불상은 일부에서 전형적 양식의 퇴화가 엿보이며 기법의 둔화, 의문의 도식적 처리 등으로 보아 그 조성 연대는 고려 중기 이후 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입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4각에 가까운 원추형 바위가 있다. 여기 바위 전면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바위 정상에는 동자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동면에는 좌상 1구가 있고 북면에도 좌상 1구가 있는데 합장하고 있다. 남면에는 4구의 입불이 있는데 모두 수법이 비슷하다. 또 서면에는 원래 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지만 일제 시에 광부들이 떼어냈다고 한다. 이들 불상들은 모두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명확하며 얼굴의 세부 는 뚜렷하지는 않으나 윤곽이 분명하고 우아한 편이다. 그러나 체 구는 빈약하고 굴곡도 표현되지 않았으며 신체의 구분, 의문 등 선 처리에 있어서도 너무 도식적이다. 좌상, 입상이 모두 비슷한 크기이며 발아래에는 1단의 돌출부를 마련하여 자연태좌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7불이지만 없어진 서면 불상까지 합하면 9불이 된다. 원추형 비슷한 4면석에 다수의 불상이 비스듬하게 조각된 예는 극 히 드물며 또한 이렇게 4면 불을 조성한 예 역시 우리 나라의 귀중한 불상의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 불상은 일부에서 전형적 양식의 퇴화가 엿보이며 기법의 둔화, 의문의 도식적 처리 등으로 보아 그 조성 연대는 고려 중기 이후 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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