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 산193
가야가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축성했던 것을 조선선조 25년에 곽재우가 왜군과 접전키 위해 개축한 산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전쟁때의 격전지로 유엔군이 승리한 성이기도 하다. 산의 동부 6부 능선을 타고 서남으로 향하면서 타원형을 그리고 있고, 성벽은 토석혼합으로 사다리꼴로 쌓았다. 형태는 잔존하지만 무너져 내려 석재가 혼란한 데, 연대나 유래를 살필 만한 기록이 없어 아쉽다.
가야가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축성했던 것을 조선선조 25년에 곽재우가 왜군과 접전키 위해 개축한 산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전쟁때의 격전지로 유엔군이 승리한 성이기도 하다. 산의 동부 6부 능선을 타고 서남으로 향하면서 타원형을 그리고 있고, 성벽은 토석혼합으로 사다리꼴로 쌓았다. 형태는 잔존하지만 무너져 내려 석재가 혼란한 데, 연대나 유래를 살필 만한 기록이 없어 아쉽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