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절터의 서북방에 [효태(孝台)]라고 부르는 고태(高台)가 있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에 석탑이 있다. 근본조형은 이중기단의 삼층석탑인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서 특이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하층기단 면석(面石)에는 사구(三區)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여 그 안에 천인상을 양각하였고 모두 보관(寶冠)과 영락(瓔珞)으로 몸을 장식 천의를 공중에 휘날리며 또한 연화태(蓮花台) 자세도 각양각태로 악기를 잡아 연주하고 혹은 팔을 벌려 춤을 추며 혹은 꽃을 받쳐 공양하는 모습으로 모두 불천(佛天)을 찬미하고 있다. 상층기단은 우주(隅柱)를 대신하여 자웅 두쌍의 사자를 배치하고 사자의 머리위에도 련화태를 얹어 갑석(甲石)을 받고 있다. 더구나 그 중앙에 찰주(擦柱) 대신 합장한 대덕(大德)의 입상을 세운 양식 또한 특이하다. 우주를 사자로 대치한 양식은 이미 삼국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탑기단의 네모서리에 사자를 배치한 양식과 관련시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탑신부는 일반형의 탑신과 다를 바 없으나 초층 탑신 사면에 문비형(門扉形)을 모각하고 그 좌우로 인왕상, 양측면에 사천왕상, 배면에 보살상을 우각함으로써 능숙한 기법과 균제된 조형은 명공의 신품이라 할 것이며 당시 신앙의 일면과 예지를 엿볼 수 있다.
이 탑은 연기조사(緣起祖師) 신라 진흥왕 5년(AD 544)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모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하나 탑의 조법(彫法)이나 조식(彫飾)으로 보아 년대에 의심이 가고 조선사찰사료에 선덕왕 10년 계유(AD 643)에 자장률사가 이 사찰의 증건과 동시에 석존사리탑과 석등 등을 건조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탑의 조성과 연기와는 관계가 없는 듯 하다. 다만 연기조사(緣起祖舍)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후대의 어떤 제자가 석탑을 건립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절터의 서북방에 [효태(孝台)]라고 부르는 고태(高台)가 있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에 석탑이 있다. 근본조형은 이중기단의 삼층석탑인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서 특이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하층기단 면석(面石)에는 사구(三區)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여 그 안에 천인상을 양각하였고 모두 보관(寶冠)과 영락(瓔珞)으로 몸을 장식 천의를 공중에 휘날리며 또한 연화태(蓮花台) 자세도 각양각태로 악기를 잡아 연주하고 혹은 팔을 벌려 춤을 추며 혹은 꽃을 받쳐 공양하는 모습으로 모두 불천(佛天)을 찬미하고 있다. 상층기단은 우주(隅柱)를 대신하여 자웅 두쌍의 사자를 배치하고 사자의 머리위에도 련화태를 얹어 갑석(甲石)을 받고 있다. 더구나 그 중앙에 찰주(擦柱) 대신 합장한 대덕(大德)의 입상을 세운 양식 또한 특이하다. 우주를 사자로 대치한 양식은 이미 삼국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탑기단의 네모서리에 사자를 배치한 양식과 관련시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탑신부는 일반형의 탑신과 다를 바 없으나 초층 탑신 사면에 문비형(門扉形)을 모각하고 그 좌우로 인왕상, 양측면에 사천왕상, 배면에 보살상을 우각함으로써 능숙한 기법과 균제된 조형은 명공의 신품이라 할 것이며 당시 신앙의 일면과 예지를 엿볼 수 있다.
이 탑은 연기조사(緣起祖師) 신라 진흥왕 5년(AD 544)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모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하나 탑의 조법(彫法)이나 조식(彫飾)으로 보아 년대에 의심이 가고 조선사찰사료에 선덕왕 10년 계유(AD 643)에 자장률사가 이 사찰의 증건과 동시에 석존사리탑과 석등 등을 건조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탑의 조성과 연기와는 관계가 없는 듯 하다. 다만 연기조사(緣起祖舍)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후대의 어떤 제자가 석탑을 건립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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