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향교는 조선 세종 즉위년(1418)에 대왕의 태실을 지금의 곤명현 소곡산에 안치한 연고로 이듬해(1413)에 곤명현과 남해현을 합하여 곤남군으로 승격되고서부터 그 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종 25년(1530)에 곤양군수 어득강이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치적 가운데 특히, '유화지도'에 힘써 많은 유생을 배출하였다. 그후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기가 최길지인 서정산 동편의 범동으로 이건하였으며, 순조 7년(1807) 5월에는 군수 신오가 범동의 향교지가 협소 부적함을 알고 지역유지와 합의하여 현위치로 또 다시 이건하였다. 순조23년(1827)에는 박사규 군수가 부임하여 관민총의로 대성전을 중수하고, 헌종 13년(1874)에 풍화루가 소실되었던것을 그후 지역유지들의 의연금으로 복구하였다. 또 1961년에는 국비보조 270만원과 지방유지들의 도움으로 교각 전체를 보수하였고, 그 후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차에 걸쳐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여러 건물 가운데 서제는 도의 보조 2,800만원으로 1988년 6월에 준공한 건물이다. 대성전에는 본래 5성, 맹문 10철, 안조6현, 우리나라 18현을 향사하였으나, 1949년 유림대회의 결의로 지금은 5성과 송조 2현 및 우리나라 18현만을 향사하고 있다.
곤양향교 - 5성과 송조 2현 및 우리나라 18현을 제향하는 곤양향교
곤양향교는 조선 세종 즉위년(1418)에 대왕의 태실을 지금의 곤명현 소곡산에 안치한 연고로 이듬해(1413)에 곤명현과 남해현을 합하여 곤남군으로 승격되고서부터 그 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종 25년(1530)에 곤양군수 어득강이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치적 가운데 특히, '유화지도'에 힘써 많은 유생을 배출하였다. 그후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기가 최길지인 서정산 동편의 범동으로 이건하였으며, 순조 7년(1807) 5월에는 군수 신오가 범동의 향교지가 협소 부적함을 알고 지역유지와 합의하여 현위치로 또 다시 이건하였다. 순조23년(1827)에는 박사규 군수가 부임하여 관민총의로 대성전을 중수하고, 헌종 13년(1874)에 풍화루가 소실되었던것을 그후 지역유지들의 의연금으로 복구하였다. 또 1961년에는 국비보조 270만원과 지방유지들의 도움으로 교각 전체를 보수하였고, 그 후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차에 걸쳐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여러 건물 가운데 서제는 도의 보조 2,800만원으로 1988년 6월에 준공한 건물이다. 대성전에는 본래 5성, 맹문 10철, 안조6현, 우리나라 18현을 향사하였으나, 1949년 유림대회의 결의로 지금은 5성과 송조 2현 및 우리나라 18현만을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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