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솔사 대양루 - 다솔사에서 가장 오래된 누각 다솔사 대양루

by 넥스루비 2007. 8. 7.

다솔사의 현존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누각으로서 1974년 2월 16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양루는 경내 입구 오른편에 웅장한 모습으로 본전과 마주하고 있다. 아래·윗층의 높이가 모두 13m에 달하며, 36개의 아름드리 큰 기둥이 그 육중한 몸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아래층은 본래 출입문 구실을 해왔으나 누각 왼편에 새로 돌계단이 생기면서 지금은 칸막이로 창고와 기타 용도로 이용되고, 2층은 승려들의 수도장일 뿐 아니라 불교신자들의 집회장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해방전에는 민족전신 함양의 도장이었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는 좌우익의 혼탁한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지역사회 청년들의 교육도장이 된 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6.25때는 서울에서 피난온 동여중학교가 이곳으로 옮겨와 학생들의 교실로서 4년간이나 활용된 바 있어 2세교육에 이바지함이 컸다. 한편, 다솔사 연혁 가운데 대양루에 관한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선종 25년(1592) 임진왜란때 우리나라 대개의 사찰이 그러했듯이 다솔사도 병화의 수난을 입어 폐허화되어 방치되다가 94년이 지난 후 숙종 12년(1686)에 신양자, 령일, 곤봉자, 혜능, 사연과 주지 자청 등이 힘을 모아 10여년의 세월에 걸쳐 중건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2년 뒤인, 영조 24년(1748)에 제야의 실화로 인하여 불행히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하여 영조 34년에 명부전과 대양루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 7일 다솔사는 또 한번의 대화재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이 때 대양루만은 그 화를 면했다. 1960년 경에 주지 지원이 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근래에 이르러 노후된 뭄채가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붕괴 직전에 있던 것을 5,000만원의 재정지원으로 1986년 8월 보수를 마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86년 보수 때 대양루 '상량축문'과 '상량대중사록'등의 귀중한 기록이 발견되어 지상에 발표된 적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중건연대가 영조 34년(1758)으로서, <다솔사 명부전 대양루 사왕문 중건기>와 일치함을 알수 있다. 이와같이 대양루는 <중건기>뿐만 아니라 대량축문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연륜이 230여년이나 되는 건물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