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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삼천포농악 12차 - 매우 빠르고 씩씩한 진주.삼천포농악 12차

by 넥스루비 2007. 8. 7.
농악은 애초에는 상고시대의 농경의례의 악으로 발달하여 부락단위의 군대조련의 방편으로 연주되기도 했는데 은산별신굿에 신목봉영의 절차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농민들의 오락으로 변화하여 악사들이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와 같은 타악기를 치며 의식, 행진, 등놀이, 춤, 노작 따위를 연출하는 음악을 가리켜 농악이라 한다. 본디 농악은 굿, 풍장, 매구 따위로 갈라지며 또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경기농악, 호남농악, 영남농악, 영동농악으로 대별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농악 12차는 영남농악 가운데 진주·삼천포지방에 전승되는 판굿인 것이다. 이것은 상고시대의 제천의식에서 남녀가 가무를 행하였다는 기록에서 사람들은 농악의 기원을 찾고 있는데 농악은 이런 제천의식과 같은 마을굿에서 발생하여 여러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이 틀림없다. 마을굿에는 흔히 굿대들이 서낭대를 모시고 풍장을 치며 서낭당에 가서 서낭을 받아모시고 다시 풍장을 치며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집돌이를 하고 굿청에서 굿을 하는데 집돌이할 때 마을사람들이 서낭대에 돈과 쌀을 달아준다. 무당이 없이 굿패들이 마을굿을 하게되어 당굿 농악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정초에 액을 막고 복을 빌기 위하여 당굿과 같이 농악을 치는데서 마당밟기 농악 즉 답정굿, 지신밟기 등이 발생하였고 당굿 농악이나 마당밟기 농악을 칠 때 돈과 쌀이 걷히는 것에 따라 마을의 공금을 갹출하기 위하여 마을마다 돌며 마당밟기와 같이 농악을 치는데서 걸입농악이 발생 했고 두레패들이 김매기 할 때 풍년을 빌고 두레의 일이 잘되도록 당굿과 같이 농악을 치는데서 두레굿이 생겼다고 보여진다. 당굿도 서낭당에서 판놀음을 벌이는데서 판굿이 발생하였다고 보이며 판굿에서 농악의 기예가 발전함에 따라 저자를 돌며 판굿을 벌이는데서 남사당패 농악이나 짠지패 농악과 같은 것들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진주·삼천포농악의 판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진주의 황일백과 삼천포 문백윤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는데, 뒤에 양산에 사는 이영우가 추가로 인정되고 진주의 김선옥이 기능보유자로 지정 받으면서 진주·삼천포 농악 보존회가 결성되었다. 진주·삼천포농악은 나팔수, 영기, 포수, 양반, 집사 상쇠, 목쇠, 끌쇠, 수징, 목징, 설북, 중북, 끝북, 설장고, 목장고, 끝장고, 수법고, 목법고, 삼법고, 끝법고 등으로 편성된다. 이 농악의 판굿은 얼림굿, 오방진 덧뵈기, 쌍진풀이, 벅꾸놀이, 영산다드래기, 양반 포수놀이, 연풍대, 먹법구 푸마시, 앉은 벅꾸, 운봉대 소리굿, 별거리 호호굿, 날진 그밖의 많은 절차로 노는데 이것들을 12가지로 모아사 12차라 부른다. 또 이 고장의 쇠가락에는 다드래기, 덧배기, 길군악, 삼채, 영산다드래기 따위가 있다. 이 농악에는 쇠가락에 빠른 가락이 많고 소고잡이의 상모놀음과 곡예적인 놀이가 발달하였고 빨리 돌아가는 진법놀이가 많아서 매우 활발하고 씩씩한 것이 특색이다.
삼천포농악 12차는 전쟁놀이 또는 진놀이 인데 12차 놀이는 차마다 3개의 가락이 있어 모두 12차 36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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