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성은 해발 603m되는 산성산을 주봉으로 하고 연대봉·노적봉·철마봉 등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산성의 전체 길이는 약 5km에 달하며 행정구역은 북쪽과 동쪽은 전북 순창군 팡덕면 청계리에 연접되고 남쪽으로는 담양 금성면 금성리, 서쪽은 담양호가 연결되고 있다.
보국문
금성산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에 각각 외성문이 있다. 먼저 남문을 보면 본성인 체성에 있는데 남문의 200여m 아래에 외성과 외성문이 있다. 퇴락이 심하여 그 형체를 파악하기 힘드나 외성문에서 삼각형으로 연결되어 주성벽에 닿는 부분에 있다.
동문은 남문에서 보아 우측인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고 있으며 축태 모양의 평탄하고 넓은 단을 쌓고 그 사이에 빗장걸이가 있어 성문의 문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문은 동문처럼 성벽의 단면 방향으로 좌우의 성벽에 연결하여 축태 모양의 넓은 단을 쌓고 그 단 사이에 성문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문은 남문에서 마을안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가면 북문에서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오는 지점에 있다. 4개의 문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편이다. 축대모양의 넓은 단을 쌓고 그 단 사이에 성문을 배치한 흔적이 여실하다. 장군목을 걸친 빗장걸이가 완벽하게 남아 있으며 옹성의 규모도 가장 크고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금성산성은 산세의 지형을 잘 이용한 포곡식 산성으로 유사시에 즉시 입성할 수 있는 한편 적으로부터 방어 또는 역습을 감행할 수 있는 전형적인 산성에 속한다. 산성의 축조시기는 속전에 삼국 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그 근거는 희박하며 문헌상(고려사절요)으로는 고려 우왕6년(1380)조에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으로 상한 할 것 같다.
성의 수축으로는 1610년(광해 2)에 부사 최동립이 개축하고, 1622 년(광해 14) 순찰사 황근중이 별장 정계숙에게 명하여 내성에 대장청을 건립케 하였으며 1653년(효종 4)에는 관팡사 심택이 내성을 수축하였다. 이후로는 수·개축의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성의 관리는 꾸준히 계속되었던 것 같다. 『금성근별장선생안』에 의하면 1742년(영조 18) ~ 1875년(고종 12)까지 재임했던 별장들의 명단이 기록되고 있다.
충용문
노적봉
철마봉
철마봉에서 본 담양호
서문
동문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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