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남양면 북양리 642 (용주사 보관)
이 책은 호신< 護身 > 또는 독송용< 讀誦用 >으로 판각< 版刻 >한 수진본< 袖珍本 >이다.
지기< 誌記 >에 의하면 각원< 覺圓 >이 비구< 比丘 > 달현< 達玄 >, 영흥< 永興 > 등과 신사< 信士 > 이기< 李琦 >, 전대동< 田大同 > 등과 함께 발원하여 고연< 古燕 >에서 우연히 본국< 本國 >의 승려 홍회< 洪淮 >이 쓴 소자본< 小字本 > 금강경을 구하여 고려< 高麗 > 충선왕< 忠宣王 >3년< 年 >(1311)에 판각< 板刻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붙어 있는 인출기< 印出記 >를 보면 고려 충숙왕복위< 忠肅王復位 >8년< 年 >(1339)에 진성군< 晉城君 > 강금강< 姜金剛 >이 시주< 施主 >하여 인출< 印出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수진본< 袖珍本 >은 한동안 수지독송< 受持讀誦 >하다가 복장< 腹藏 >되었던듯 일부 헤어진 곳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출기< 印出記 >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판각된지 18년후에 인출한 것으로 글자에 마멸이 별로 없고 인쇄 상태가 양호하다. 이 책이 나온 봉림사< 鳳林寺 > 목조여래좌상< 木造如來坐像 >의 개금기< 改金記 >에 의하면 고려< 高麗 > 공민왕< 恭愍王 >11년< 年 >(1362) 개금< 改金 >때 복장< 腹藏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 권제사십팔< 卷第四十八 >은 감지에 은니로 쓴 주본< 周本 > 화엄경< 華嚴經 >80권 가운데 제 48권이다. 내용은 화엄경 전체 39품중 제 34품 여래십신상해품< 如來十身相海品 >과 제 35품 여래수호광명공덕품< 如來髓好光明功德品 >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품격으로 보아 고려 말기의 사경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방대한 화엄경을 은니로 사성한 것 가운데 잔권< 殘卷 >이나 고려말에 사경 신앙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 白紙墨書妙法蓮華經 > 권제이< 卷第二 >는 법화경 28품 가운데 제 3비유품< 譬喩品 >과 제 4신해품< 信解品 >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 7권 가운데 잔권< 殘卷 >이므로 사성기< 寫成記 >가 실려 있지 않아서 확실한 사성연대< 寫成年代 >는 알 수 없으나 보물< 寶物 >315호< 號 > 광흥사< 廣興寺 > 소장< 所藏 >의 백지묵서 묘법연화경과 체제가 비슷하고 표지는 내소사< 來蘇寺 >의 백지묵서 묘법연화경의 표지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품격< 品格 >으로 보아 고려말< 高麗末 >에서 조선조< 朝鮮朝 > 초기< 初期 >에 사성< 寫成 >된 사경으로 추정< 推定 >된다.
백지묵서범망경< 白紙墨書梵網經 >은 양질의 두꺼운 백지에 먹으로 쓴 범망경이다. 권말에 사성기< 寫成記 >가 없고 다만 ‘화주< 化主 > 혜상< 惠尙 > 묘원< 妙圓 > 최신성< 崔信誠 > 시주< 施主 > 경화택주< 慶和宅主 > 이씨< 李氏 > ’ 등 사경< 寫經 >에 참여한 화주< 化主 >와 시주자< 施主者 >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존시기< 生存時期 >가 미상이므로 사성시기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뒷 표지의 장식과 본문글씨로 보아 조선 초기의 사경으로 추정되며 달필로 정성껏 만든 사경가운데 하나이다.
과주< 科注 >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 합부< 合部 >는 전체 7권을 얇은 종이에 앞뒤로 찍어내어 한 책으로 제본한 것이다. 더구나 본문위에 본문을 과주< 科注 >한 것을 붙여 내용을 알기 쉽게 하였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간행한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간행년대는 알 수 없으나 명태조< 明太祖 >의 명< 命 >에 의해서 간행한 대보은사판< 大報恩寺版 > 대장경< 大藏經 >의 영향을 받은 명나라 초기< 初期 >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소자< 小字 > 금강반야파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 >은 모두 5장에 경문을 수록한 것이나 둘째장이 없어졌다. 권말의 무의자혜심< 無衣子慧諶 >(1178∼1234)의 발문에 의하면 사문 보관< 普觀 >이 발원하여 간행했다. 여기서 정혜쌍수< 定慧雙修 >를 주창하신 보조국사 지눌의 조계산 수선사< 修禪社 > 제< 第 >2세국사< 世國師 >인 혜심의 발문이 붙어 있어 이 낱장본의 가치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소자< 小字 > 범총지집일부< 梵摠持集一部 >는 금강경 낱장과 함께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소자< 小字 > 불정심관세음보살대타라니경< 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 > 권상< 卷上 >, 중< 中 >, 하< 下 >는 권말에 2행의 발문이 있는데 둘째행은 보이지 않고 간행년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청하상국< 淸河相國 >의 수복< 壽福 >을 빌기 위해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청하상국은 고려 고종때 권신< 權臣 > 최우< 崔瑀 >로 추정되고 있으며 앞에 보인 낱장과 인쇄 조건이 비슷하므로 고려 고종때 간행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호신< 護身 > 또는 독송용< 讀誦用 >으로 판각< 版刻 >한 수진본< 袖珍本 >이다.
지기< 誌記 >에 의하면 각원< 覺圓 >이 비구< 比丘 > 달현< 達玄 >, 영흥< 永興 > 등과 신사< 信士 > 이기< 李琦 >, 전대동< 田大同 > 등과 함께 발원하여 고연< 古燕 >에서 우연히 본국< 本國 >의 승려 홍회< 洪淮 >이 쓴 소자본< 小字本 > 금강경을 구하여 고려< 高麗 > 충선왕< 忠宣王 >3년< 年 >(1311)에 판각< 板刻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붙어 있는 인출기< 印出記 >를 보면 고려 충숙왕복위< 忠肅王復位 >8년< 年 >(1339)에 진성군< 晉城君 > 강금강< 姜金剛 >이 시주< 施主 >하여 인출< 印出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수진본< 袖珍本 >은 한동안 수지독송< 受持讀誦 >하다가 복장< 腹藏 >되었던듯 일부 헤어진 곳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출기< 印出記 >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판각된지 18년후에 인출한 것으로 글자에 마멸이 별로 없고 인쇄 상태가 양호하다. 이 책이 나온 봉림사< 鳳林寺 > 목조여래좌상< 木造如來坐像 >의 개금기< 改金記 >에 의하면 고려< 高麗 > 공민왕< 恭愍王 >11년< 年 >(1362) 개금< 改金 >때 복장< 腹藏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 권제사십팔< 卷第四十八 >은 감지에 은니로 쓴 주본< 周本 > 화엄경< 華嚴經 >80권 가운데 제 48권이다. 내용은 화엄경 전체 39품중 제 34품 여래십신상해품< 如來十身相海品 >과 제 35품 여래수호광명공덕품< 如來髓好光明功德品 >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품격으로 보아 고려 말기의 사경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방대한 화엄경을 은니로 사성한 것 가운데 잔권< 殘卷 >이나 고려말에 사경 신앙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 白紙墨書妙法蓮華經 > 권제이< 卷第二 >는 법화경 28품 가운데 제 3비유품< 譬喩品 >과 제 4신해품< 信解品 >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 7권 가운데 잔권< 殘卷 >이므로 사성기< 寫成記 >가 실려 있지 않아서 확실한 사성연대< 寫成年代 >는 알 수 없으나 보물< 寶物 >315호< 號 > 광흥사< 廣興寺 > 소장< 所藏 >의 백지묵서 묘법연화경과 체제가 비슷하고 표지는 내소사< 來蘇寺 >의 백지묵서 묘법연화경의 표지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품격< 品格 >으로 보아 고려말< 高麗末 >에서 조선조< 朝鮮朝 > 초기< 初期 >에 사성< 寫成 >된 사경으로 추정< 推定 >된다.
백지묵서범망경< 白紙墨書梵網經 >은 양질의 두꺼운 백지에 먹으로 쓴 범망경이다. 권말에 사성기< 寫成記 >가 없고 다만 ‘화주< 化主 > 혜상< 惠尙 > 묘원< 妙圓 > 최신성< 崔信誠 > 시주< 施主 > 경화택주< 慶和宅主 > 이씨< 李氏 > ’ 등 사경< 寫經 >에 참여한 화주< 化主 >와 시주자< 施主者 >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존시기< 生存時期 >가 미상이므로 사성시기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뒷 표지의 장식과 본문글씨로 보아 조선 초기의 사경으로 추정되며 달필로 정성껏 만든 사경가운데 하나이다.
과주< 科注 >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 합부< 合部 >는 전체 7권을 얇은 종이에 앞뒤로 찍어내어 한 책으로 제본한 것이다. 더구나 본문위에 본문을 과주< 科注 >한 것을 붙여 내용을 알기 쉽게 하였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간행한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간행년대는 알 수 없으나 명태조< 明太祖 >의 명< 命 >에 의해서 간행한 대보은사판< 大報恩寺版 > 대장경< 大藏經 >의 영향을 받은 명나라 초기< 初期 >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소자< 小字 > 금강반야파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 >은 모두 5장에 경문을 수록한 것이나 둘째장이 없어졌다. 권말의 무의자혜심< 無衣子慧諶 >(1178∼1234)의 발문에 의하면 사문 보관< 普觀 >이 발원하여 간행했다. 여기서 정혜쌍수< 定慧雙修 >를 주창하신 보조국사 지눌의 조계산 수선사< 修禪社 > 제< 第 >2세국사< 世國師 >인 혜심의 발문이 붙어 있어 이 낱장본의 가치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소자< 小字 > 범총지집일부< 梵摠持集一部 >는 금강경 낱장과 함께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소자< 小字 > 불정심관세음보살대타라니경< 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 > 권상< 卷上 >, 중< 中 >, 하< 下 >는 권말에 2행의 발문이 있는데 둘째행은 보이지 않고 간행년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청하상국< 淸河相國 >의 수복< 壽福 >을 빌기 위해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청하상국은 고려 고종때 권신< 權臣 > 최우< 崔瑀 >로 추정되고 있으며 앞에 보인 낱장과 인쇄 조건이 비슷하므로 고려 고종때 간행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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