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85 경기도 박물관
중국 수(隋)나라 때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538~597)의 교관이문(敎觀二門)에 대한 내용을 채록하여 간행한 것으로 고려 광종(光宗) 때의 승려 제관이 지었다. 이 책은 법화경을 근본 경전으로 삼는 천태종의 사상을 집약한 책이다.
저자에 대한 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으나 960년(광종11) 오월(吳越)의 왕이 천태종 관계 서적을 구하기 위하여 고려로 사신을 보내자 왕의 명을 받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나계사에서 10여년 동안 천태학을 연구하고 천태사교의를 저술하였다. 그러나 상자에 감추어 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가 죽은 뒤 상자에서 빛이 나서 열어보니 이 책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에서 이 책을 주석한 것이 약 73종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천태학을 중국, 일본 등에 전하여 그 명성을 떨쳤음을 알 수 있다.
권말(卷末)에 있는 목암노인의 글에 의하면 고려말 당시의 천태사교의는 글자가 크고 책이 무거워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기가 불편하여 대선사 굉지가 산인 수여에게 다시 쓰게 하여 1315년(충숙왕 2) 기복도감에서 다시 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두 31장으로 고려시대의 승려가 쓴 불교서적으로 매우 귀중하다.
중국 수(隋)나라 때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538~597)의 교관이문(敎觀二門)에 대한 내용을 채록하여 간행한 것으로 고려 광종(光宗) 때의 승려 제관이 지었다. 이 책은 법화경을 근본 경전으로 삼는 천태종의 사상을 집약한 책이다.
저자에 대한 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으나 960년(광종11) 오월(吳越)의 왕이 천태종 관계 서적을 구하기 위하여 고려로 사신을 보내자 왕의 명을 받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나계사에서 10여년 동안 천태학을 연구하고 천태사교의를 저술하였다. 그러나 상자에 감추어 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가 죽은 뒤 상자에서 빛이 나서 열어보니 이 책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에서 이 책을 주석한 것이 약 73종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천태학을 중국, 일본 등에 전하여 그 명성을 떨쳤음을 알 수 있다.
권말(卷末)에 있는 목암노인의 글에 의하면 고려말 당시의 천태사교의는 글자가 크고 책이 무거워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기가 불편하여 대선사 굉지가 산인 수여에게 다시 쓰게 하여 1315년(충숙왕 2) 기복도감에서 다시 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두 31장으로 고려시대의 승려가 쓴 불교서적으로 매우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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