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204 호암미술관
전< 全 > 7권< 卷 > 중 권제< 卷第 >3 영권< 零卷 > 1첩< 帖 >만이 불복< 佛腹 >에서 나와 전래< 傳來 >된 것이다.
끝 권< 卷 >의 간기< 刊記 >를 잃어 간행동기< 刊行動機 >와 경위< 經緯 > 그리고 정확한 간각시기< 刊刻時期 >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판하서< 板下書 >의 서법< 書法 >이 태종< 太宗 >1년< 年 >(1401) 신총대사< 信聰大師 >가 당시 태상왕< 太上王 >으로 있었던 태조< 太祖 >의 명령< 命令>을 받들어 정서< 精書 > 판각< 板刻 >한 수능엄경< 首楞嚴經 >(보물< 寶物 > 제< 第 >759호< 號 >)과 서로 꼭같다. 그 무렵 판각< 板刻 >하여 찍어낸 듯 인쇄< 印刷 >가 매우 정교하다.
전< 全 > 7권< 卷 > 중 권제< 卷第 >3 영권< 零卷 > 1첩< 帖 >만이 불복< 佛腹 >에서 나와 전래< 傳來 >된 것이다.
끝 권< 卷 >의 간기< 刊記 >를 잃어 간행동기< 刊行動機 >와 경위< 經緯 > 그리고 정확한 간각시기< 刊刻時期 >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판하서< 板下書 >의 서법< 書法 >이 태종< 太宗 >1년< 年 >(1401) 신총대사< 信聰大師 >가 당시 태상왕< 太上王 >으로 있었던 태조< 太祖 >의 명령< 命令>을 받들어 정서< 精書 > 판각< 板刻 >한 수능엄경< 首楞嚴經 >(보물< 寶物 > 제< 第 >759호< 號 >)과 서로 꼭같다. 그 무렵 판각< 板刻 >하여 찍어낸 듯 인쇄< 印刷 >가 매우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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