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204 호암미술관
세종< 世宗 >22년< 年 >(1440)에 선종사찰< 禪宗寺刹 >인 현고사 < 玄高寺 >의 주지< 住持 >을 역임했던 해연< 海淵 >이 필사< 筆寫 >한 사경< 寫經 >으로 두꺼운 백지 < 白紙 >에 먹으로 쓴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 > 완질본< 完帙本 >이다.
이 사경< 寫經 >은 최천경< 崔天景 >등 22인< 人 >의 시주< 施主 >를 받아 사성< 寫成 >된 것으로 비단으로 배접된 포갑< 包匣 >속에서 조금도 결손이 없이 보존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유례가 드문 조선 초기의 사경으로 고려시대의 것보다 수법이 다소 떨어지나 표지의 장식이나 경명표시< 經名表示 >등이 고려시대 수법을 잇고 있다. 고려사경< 高麗寫經 >과는 달리 개인발원경< 個人發願經 >이 아니고 공동< 共同 >으로 발원< 發願 >하여 사성< 寫成 >한 사경< 寫經 >이다.
특히 시주자< 施主者 >가 평민< 平民 >또는 천민< 賤民 >으로 고려시대< 高麗時代 > 사경제작< 寫經製作 >과는 다른 일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조선초기 사경< 寫經 >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세종< 世宗 >22년< 年 >(1440)에 선종사찰< 禪宗寺刹 >인 현고사 < 玄高寺 >의 주지< 住持 >을 역임했던 해연< 海淵 >이 필사< 筆寫 >한 사경< 寫經 >으로 두꺼운 백지 < 白紙 >에 먹으로 쓴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 > 완질본< 完帙本 >이다.
이 사경< 寫經 >은 최천경< 崔天景 >등 22인< 人 >의 시주< 施主 >를 받아 사성< 寫成 >된 것으로 비단으로 배접된 포갑< 包匣 >속에서 조금도 결손이 없이 보존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유례가 드문 조선 초기의 사경으로 고려시대의 것보다 수법이 다소 떨어지나 표지의 장식이나 경명표시< 經名表示 >등이 고려시대 수법을 잇고 있다. 고려사경< 高麗寫經 >과는 달리 개인발원경< 個人發願經 >이 아니고 공동< 共同 >으로 발원< 發願 >하여 사성< 寫成 >한 사경< 寫經 >이다.
특히 시주자< 施主者 >가 평민< 平民 >또는 천민< 賤民 >으로 고려시대< 高麗時代 > 사경제작< 寫經製作 >과는 다른 일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조선초기 사경< 寫經 >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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