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왕시 내손동 643-13 경춘빌라 가동 1302호
이것은《삼국유사< 三國遺事 >》로서 권일< 卷一 > ·권이< 卷二 >가 없는 잔본< 殘本 >인데다가 책 첫머리인 권삼< 卷三 >이 6장, 끝인 권오< 卷五 >가 끝으로 4장이 없어진 결본< 缺本 >이다.《삼국유사< 三國遺事 >》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조선< 朝鮮 > 중종< 中宗 >7년(1512) 임신< 壬申 >에 경주부< 慶州府 >에서 발행한 것이 있어, 그 중에서 안정복< 安鼎福 >의 수택본< 手澤本 >이 일인학자< 日人學者 > 금서룡< 今西龍 >의 소유로 된 것과, 뒤에 고< 故 > 황의돈< 黃義敦 > 씨< 氏 >의 소장본으로 지금 서울대학교< 大學校 > 중앙도서관에 들어간 것이 모두 조선< 朝鮮 > 초기에 간행된 소위 정덕본< 正德本 >인 중종조< 中宗朝 > 간본< 刊本 >이다.
이 책은 자체< 字體 >가 고르며 도각< 刀刻 >이 정교하고 지질< 紙質 >이 오랜 것이어서 위의 두 가지보다 더 좋은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고< 故 > 권덕규< 權悳奎 > 씨< 氏>가 가졌던 것을 이인영< 李仁榮 > 씨< 氏 >가 입수< 入手 >하였다가 다시 현< 現 > 소장자에게로 돌아갔다. 권수< 卷首 >에「이병직인< 李秉直印 >」「송은< 松隱 >」과 함께「전주이씨< 全州李氏 >」「청분실< 淸芬室 >」등의 인기< 印記 >가 있고, 권오< 卷五 > 첫장에「최산진장< 崔山珍藏 >」(이상 모두 4각형 소인< 小印 >), 권말< 卷末 >에 타원형의「청분실< 淸芬室 >」인기< 印記 >가 찍혀 있다. 고< 故 > 송석하< 宋錫夏 > 씨< 氏 >가 가졌던《삼국유사< 三國遺事 >》의 왕력< 王曆 >과 권일< 卷一 >이 이 책과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이인영< 李仁榮 > 씨< 氏 >가 지은《청분실서목< 淸芬室書目 >》가운데에 이 책의 해제< 解題 >가 들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고증이 있다. 최남선< 崔南善 > 씨< 氏 >가《신정삼국유사< 新訂三國遺事 >》를 낼 때에 송씨< 宋氏 >의 책만 참고하였고 이 책을 미처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오자< 誤字 >를 교정< 校正 >하지 못하였다. 곧 신정본< 新訂本 > 127면< 面 > 제< 第 >3행< 行 > 주< 註 >의「위< 爲 >」는「위< 僞 >」이며, 137면< 面 > 제< 第 >8행< 行 >「상률사< 廂律師 >」는「일상률사< 一相律師 >」이며, 156면< 面 > 제< 第 >11행< 行 >「무체차처폐문이입< 無滯此處閉門而入 >」은「무체차체폐문이입< 無滯此遞閉門而入 >」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미처 다 교정< 校正 >하지 못하였다. 이상에서 밝힌 것을 보아도 이 책이 다른 책보다 연대가 앞서며, 내용이 좋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에서 고려< 高麗 > 왕휘< 王諱 >의 결획< 缺劃 >에 있어서 무< 武 > ·무< 무 > 등< 等 >의 자< 字 >는 결획< 缺劃 >을 하였으나 효< 曉 > 같은 것이 완전한 형태로 있는 것을 보면 이것도 역시 조선조< 朝鮮朝 >에 들어온 이후의 각본< 刻本 >인 듯하나 현존< 現存 >한 것으로 가장 좋은 유물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삼국유사< 三國遺事 >》로서 권일< 卷一 > ·권이< 卷二 >가 없는 잔본< 殘本 >인데다가 책 첫머리인 권삼< 卷三 >이 6장, 끝인 권오< 卷五 >가 끝으로 4장이 없어진 결본< 缺本 >이다.《삼국유사< 三國遺事 >》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조선< 朝鮮 > 중종< 中宗 >7년(1512) 임신< 壬申 >에 경주부< 慶州府 >에서 발행한 것이 있어, 그 중에서 안정복< 安鼎福 >의 수택본< 手澤本 >이 일인학자< 日人學者 > 금서룡< 今西龍 >의 소유로 된 것과, 뒤에 고< 故 > 황의돈< 黃義敦 > 씨< 氏 >의 소장본으로 지금 서울대학교< 大學校 > 중앙도서관에 들어간 것이 모두 조선< 朝鮮 > 초기에 간행된 소위 정덕본< 正德本 >인 중종조< 中宗朝 > 간본< 刊本 >이다.
이 책은 자체< 字體 >가 고르며 도각< 刀刻 >이 정교하고 지질< 紙質 >이 오랜 것이어서 위의 두 가지보다 더 좋은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고< 故 > 권덕규< 權悳奎 > 씨< 氏>가 가졌던 것을 이인영< 李仁榮 > 씨< 氏 >가 입수< 入手 >하였다가 다시 현< 現 > 소장자에게로 돌아갔다. 권수< 卷首 >에「이병직인< 李秉直印 >」「송은< 松隱 >」과 함께「전주이씨< 全州李氏 >」「청분실< 淸芬室 >」등의 인기< 印記 >가 있고, 권오< 卷五 > 첫장에「최산진장< 崔山珍藏 >」(이상 모두 4각형 소인< 小印 >), 권말< 卷末 >에 타원형의「청분실< 淸芬室 >」인기< 印記 >가 찍혀 있다. 고< 故 > 송석하< 宋錫夏 > 씨< 氏 >가 가졌던《삼국유사< 三國遺事 >》의 왕력< 王曆 >과 권일< 卷一 >이 이 책과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이인영< 李仁榮 > 씨< 氏 >가 지은《청분실서목< 淸芬室書目 >》가운데에 이 책의 해제< 解題 >가 들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고증이 있다. 최남선< 崔南善 > 씨< 氏 >가《신정삼국유사< 新訂三國遺事 >》를 낼 때에 송씨< 宋氏 >의 책만 참고하였고 이 책을 미처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오자< 誤字 >를 교정< 校正 >하지 못하였다. 곧 신정본< 新訂本 > 127면< 面 > 제< 第 >3행< 行 > 주< 註 >의「위< 爲 >」는「위< 僞 >」이며, 137면< 面 > 제< 第 >8행< 行 >「상률사< 廂律師 >」는「일상률사< 一相律師 >」이며, 156면< 面 > 제< 第 >11행< 行 >「무체차처폐문이입< 無滯此處閉門而入 >」은「무체차체폐문이입< 無滯此遞閉門而入 >」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미처 다 교정< 校正 >하지 못하였다. 이상에서 밝힌 것을 보아도 이 책이 다른 책보다 연대가 앞서며, 내용이 좋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에서 고려< 高麗 > 왕휘< 王諱 >의 결획< 缺劃 >에 있어서 무< 武 > ·무< 무 > 등< 等 >의 자< 字 >는 결획< 缺劃 >을 하였으나 효< 曉 > 같은 것이 완전한 형태로 있는 것을 보면 이것도 역시 조선조< 朝鮮朝 >에 들어온 이후의 각본< 刻本 >인 듯하나 현존< 現存 >한 것으로 가장 좋은 유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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