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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읍성 남문지 - 나주읍성 남문지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나주시 성북동

나주읍성의 축조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나주는 마한 54개 국중의 하나인 「불미지국」으로 비정되고 있거니와 1018년(고려 현종 9) 목으로 승격한 이래 전주와 함께 전라도의 주요 지방도시였던 점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 태조의 나주경략(고려사절요 권1, 태조신 성대왕 원년 하 6월 병진년)이나, 현종 원년(1010) 계단의 침입시 현종이 남순하여 10여 일간 머물다가 환도(고려사절지 권3, 형종 원문대왕 2년 춘정월 정해조)한 사실 등은 지방행정 중심도시로서 의 나주의 비중과 함께 이 시기부터 나주읍성의 존재 가능성을 주론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나주읍성은 대부분의 조선 시대 읍성류와 마찬가지로 평지와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산성으로 배후에는 금성산성을 두고 있다. 전체 성벽의 규무를 복원해 보면 약 9,700m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이 훼철되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곽의 형태는 타원형이다. 현존하는 유구를 살펴보면, 먼저 서벽의 경우는 김용남씨댁 (교동 67-2번지)에서 서북지(서성문:교동 33번지)까지 126m(중간 41m 유실)가 남아 있는데 민가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중 박남수씨댁(교동 67번지) 부근이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그 규모는 길이 19m, 높이 90 ~ 240cm 로 성벽의 아랫 부분을 1 1m 크기의 자연석을 외면만 치석하여 '잔돌끼움 쌓기'방식에 의해 쌓 아 올렸다. 서문지에서 북벽까지는 잔존유구가 확인되지 않는다. 북벽의 잔존유구는 이하연씨댁(산정동 1-5번지) 부근에 길이 15m 의 석축열 1단과 북문지 해인스젝(성북동 33번지) 앞에서 나주 초 등학교 뒷편가지 약 50m에 걸쳐 성돌리 산재되어 있을 뿐이다. 동 벽은 중앙동 천변(128-12번지) 부근에 석축의 일부가 확인될 뿐 나머지 부분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남벽의 경우 현재로는 잔존 유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며 다만 남문지(남외동 2-20번지)에 주춧돌 4개가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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