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신촌리에는 본래 9기의 옹관묘가 분포도어 있었다. 1917 ~ 1918년에 5·9호분이 조사되고 1938년에 다시 6·7호분이 학술조사됨으로써 그 내용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고분군이다. 6호분은 소릉선상에 분묘를 구축하고 있는데 그 축은 남북에 두고 있다. 북쪽 분구는 원형을 취하여 보다 높고 남쪽은 편평하게 방형으로 게단상을 이룬 소위 전방후원형으로 되어 있어 일찍부터 주목되고 있는 고분이다. 조사 다시 전방부에서는 6기의 옹관이 출토되었다. 을관에서는 대도 한자루, 소도 한자루, 원저소현호 한 점, 관외에서도 원저소호 한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병관에서 원 저호 한점, 정관에서 잔 2점, 호 2점, 술관에서 술잔 2점과 철기 등이 발견되었다. 도굴된 7호분도 3기 이상의 옹관이 매장되었었 다. 9호분은 방태형 분구의 규모가 가장 커서 주분격으로 보이는 고분인데 정상부에는 상하 이중으로 옹관 12기를 매장하였다. 갑관과 을관에서는 특히 많은 부장품이 나왔는데 을관에서는 많은 금동제 관모 한점, 금동제 이식 한점, 곡옥 세점, 관옥 엿섯점, 구슬 5줄, 동제 팔찌 한점, 금동 신 한점, 홍두대도 두점, 칼 세점, 토기 항아 리 세점 등 보기적 성격을 띠고 있는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는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들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국내외 학계로부터 조목받고 있는 주요유적이다.
신촌리에는 본래 9기의 옹관묘가 분포도어 있었다. 1917 ~ 1918년에 5·9호분이 조사되고 1938년에 다시 6·7호분이 학술조사됨으로써 그 내용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고분군이다. 6호분은 소릉선상에 분묘를 구축하고 있는데 그 축은 남북에 두고 있다. 북쪽 분구는 원형을 취하여 보다 높고 남쪽은 편평하게 방형으로 게단상을 이룬 소위 전방후원형으로 되어 있어 일찍부터 주목되고 있는 고분이다. 조사 다시 전방부에서는 6기의 옹관이 출토되었다. 을관에서는 대도 한자루, 소도 한자루, 원저소현호 한 점, 관외에서도 원저소호 한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병관에서 원 저호 한점, 정관에서 잔 2점, 호 2점, 술관에서 술잔 2점과 철기 등이 발견되었다. 도굴된 7호분도 3기 이상의 옹관이 매장되었었 다. 9호분은 방태형 분구의 규모가 가장 커서 주분격으로 보이는 고분인데 정상부에는 상하 이중으로 옹관 12기를 매장하였다. 갑관과 을관에서는 특히 많은 부장품이 나왔는데 을관에서는 많은 금동제 관모 한점, 금동제 이식 한점, 곡옥 세점, 관옥 엿섯점, 구슬 5줄, 동제 팔찌 한점, 금동 신 한점, 홍두대도 두점, 칼 세점, 토기 항아 리 세점 등 보기적 성격을 띠고 있는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는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들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국내외 학계로부터 조목받고 있는 주요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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