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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덕산리 고분군 - 나주 덕산리 고분군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덕산리 고분군은 본래 10기가 분포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6기만이 남아있다. 1·4호분은 1917 ~ 1918년에, 2·3·5호분은 1938년에 조사되었다. 4호분은 직경 30m, 높이 2.9m의 원분으로 옹관 2기가 조사되고, 3호분도 파괴옹관 3기가 조사되었느느데 갑관에서는 4개의 호와 철족·도자·옥류·금동식금구편·금제장신구·관옥 등이 수습되 었다. 2호분은 전방후원분형으로 분구를 축조하였고 5호분은 분구의 북 쪽이 방형에 계단상을 이루고 있다. 특히 3호분은 직경 23 ~ 24m, 높이 9m의 대형분구를 도랑이 감싸 고 있는데 이는 대안리 9호분의 도랑이나 영암 내동리 초분골 1호 분의 도랑과 같이 이 지역 고분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외부 시설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랑은 일본의 방형주구묘 또는 원형주구 묘, 전방후원분과의 공통성을 보이고 있어 두 지역간 고분문화의 밀접한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위치적인 면에서도 구릉 잔등이나 또는 구릉 끝에 축조되었으며 매장주체시설은 정상부에 가까운 분구 중에 마련되는 점도 동일성을 갖는다. 한편 다장을 원칙으로 하는 영산강 유역의 용관묘는 한강 유역의 백제 초기 고 분인 가락동, 석촌동, 고분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 주목되는 고분들이다. 분구의 축조는 25 ~ 30도 정도 기울기의 안식각으로 쌓아 외적인 힘을 받지 않는 한 붕괴도지 않는 안전율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울기나 높이 등도 계산된 토목기술로써 당대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다. 나아가서 주구묘의 도랑은 고분을 성역화하고자 하는 목적과 다른 땅과 구별하는 의미로서 경계의 뜻도 함축하고 있는 듯 한데 이러한 고분 축조양식이 국내에서는 영산강 유역에서만 나타나고 있어 그 문화적인 양상이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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