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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유릉 - 제26대 고종황제와 동비 명성태황후 민씨의 릉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홍릉<洪陵>은 제26대<第26代> 고종황제<高宗皇帝>와 동비<同妃>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 민씨<閔氏>의 릉<陵>이다.

1966년 2월 15일 양주<楊州> 금곡리<金谷里> 유릉<裕陵>에 순종황제<純宗皇帝>, 순종황제비<純宗皇帝妃> 민씨<閔氏>와 함께 동봉이실<同封異室>에 합장<合葬>되었으며 조선왕조<朝鮮王朝> 마지막 장례<葬禮>였고 동봉삼실릉<同封三室陵>은 유릉<裕陵>뿐이다.

유릉<裕陵>은 홍릉<洪陵>과 같이 황제릉<皇帝陵>으로 조영<造營>되었다. 1926년 4월 25일 순종<純宗> 승하<昇遐>시 양주 용마산<楊州 龍馬山> 내동<內洞>의 순종 원비 민씨<純宗 元妃 閔氏>의 유릉<裕陵>을 양주 금곡리<楊州 金谷理>로 천능<遷陵>하면서 황제릉<皇帝陵>으로 조영<造營>하였다.
릉침<陵寢>엔 면석<面石>에 화문<花紋>을 새긴 12면<面>의 병풍석<屛風石>을 세웠으며 그 밖으로 화문<花紋>을 새긴 12간<間>의 난간석<欄干石>을 세웠고 난간석<欄干石> 밖에 석수<石獸>를 배치<配置>하지 않고 상석<床石> 1좌<座>를 릉침전<陵寢前>에, 그 양측<兩側>에 망주석<望柱石> 1쌍<雙>과 그 밖으로 3면<面>의 곡장<曲墻>을 설치<設置>하였다. 상석<床石> 전면<前面>에 사각형<四角形> 명등석<明燈石> 1좌<座>가 있다.
릉침<陵寢> 아래에 침전<寢殿>으로서 정자각<丁字閣>을 대신하였으며 침전<寢殿> 아래에 문<文>·무인석<武人石>, 기린<麒麟>, 상<象>, 사자<獅子>, 해치<해치>, 낙타<駱駝>, 마석<馬石>을 상면<相面> 배치<配置>한 것이나 비각<碑閣>, 수복방<守僕房> 재실<齋室>의 배치<配置>도 홍릉<洪陵>과 같다. 비면<碑面>엔 전서<篆書>로 대한순종효황제유릉<大韓純宗孝皇帝裕陵> 순명효황후부좌<純明孝皇后부左> 순정효황후부우<純貞孝皇后부右>라 썼다.

홍릉<洪陵>·유릉<裕陵>은 철종<哲宗>의 예릉<睿陵> 이전<以前>의 릉<陵>과 여러모로 다른 형식<形式>을 취<取>하고 있다. 고종대<高宗代>로부터 황제<皇帝>로 호칭<號稱>하게 되므로 왕릉<王陵>이 아닌 제릉<帝陵>으로서의 위용<威容>을 갖추기 위한 것이어서 상설<象設> 의물<儀物>의 종류<種類>나 규모<規模>, 침전<寢殿>과 재실<齋室> 등의 배치<配置> 구조<構造>가 그러하며 홍릉<洪陵>과 유릉<裕陵>을 한 경역<境域>으로 하여 양릉<兩陵> 외곽<外廓>으로 담장을 설치<設置>하여 하나의 조그만 권역<圈域>으로 묶었으며 서편<西便>에 출입문<出入門>으로서 삼문<三門>을 세웠고 양릉<兩陵> 중간<中間>에 원형<圓形>의 석조연지<石造蓮池>를 조성<造成>하였으며 양릉재실<兩陵齋室>외에 담장 남측<南側>에 외재실<外齋室> 1동<棟>을 따로 두고 있다.

또한 황릉<皇陵>의 조영<造營> 시기<時期>가 일제<日帝>의 강점치하<强占治下>였으며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韓日合倂>으로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멸망<滅亡>하였으며 다음해 2월에 일본<日本> 궁내성<宮內省> 소속<所屬>으로 설치<設置>된 이왕직<李王職>은 조선조<朝鮮朝> 왕족<王族> 및 공족<公族>의 가무<家務>를 통할<統轄> 관장<管掌>하면서 고종<高宗>과 순종황제<純宗皇帝>의 신변<身邊>·진후<診候>·공선<供膳>·의식<儀式>·접대<接待>에 관<關>한 사항<事項>, 왕실재산<王室財産>과 출납<出納> 회계<會計>에 관<關>한 사항<事項>·제사<祭祀>·묘제<廟祭>·전제<殿祭>·궁<宮>·분형<墳瑩>의 관수등<管守等> 황실<皇室>의 제반사<諸般事>를 주관<主管>하였고, 홍릉<洪陵>·유릉<裕陵>의 릉<陵> 기택정<基擇定>, 황릉조영<皇陵造營>에도 이왕직<李王職>의 의사<意思>가 작용<作用>되었을 것이며 릉지<陵地>와 부속림<附屬林>, 부속전지<附屬田地>를 이왕직<李王職>이 사인<私人>으로부터 매수<買收>한 것이다.

또한 고종<高宗>과 순종<純宗>이 왕조멸망<王朝滅亡> 후<後> 10년 가까이 지난 후<後> 승하<昇遐>로 왕조<王朝>에 의한 봉릉<奉陵>이 아니고 강점국<强占國>에 의한 황릉조영<皇陵造營>은 존숭<尊崇>의 염원<念願>이 아닌 조선국민<朝鮮國民> 감정<感情>의 회유<懷柔>의 감<感>이 짙으며 홍릉<洪陵>·유릉<裕陵>은 이로써 릉제<陵制>가 단절<斷切>되기도 하지만 조선왕릉<朝鮮王陵>의 변화<變化> 진전상<進展上>의 의미<意味>는 없다고 하겠다.



[대중교통]
1. 서울 경동시장에서 165,165-2,165-3(시내), 765(좌석)번 버스를 타고 남양주 금곡동 하차 (10분 간격)
165-3번 버스는 홍릉유릉앞에서 하차

2. 청량리시장에서 30(시내), 330(좌석)번 버스를 타고 남양주 금곡동에서 하차 (30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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