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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석빙고 - 경주 석빙고와 쌓은 기법은 같은 영산석빙고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창녕군 영산면 교리 산410-2

邑誌에 氷庫는 芍藥山 북쪽 기슭에 있으며 현감 伐石하여 축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작약산은 읍의 동쪽에 있으며 주산인 靈鷲山의 한 맥이다. 빙고가 있는 곳에서 바라다 벼면 빙고 뒤쪽 끝으로 개울이 있고 그 건너에 영취산이 있는 지형이다. 지금은 개울에 물이 말랐지만 이는 상류에 제방을 쌓았기 때문이며 옛날에는 수량이 풍부하였다. 얼음은 이 개천에서 떠서 장빙(藏氷)하였던 모양이다. 서울의 빙고에 저장하기 위하여는 얼음 두께가 4척일 때 군인들이 채빙하였는데 여기에서도 그런 두께의 얼음이 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빙고입구 문의 크기로 보아 그렇게 저장할 수 없을 듯하다. 빙고의 문은 개울의 반대 쪽 산 기슭 편으로 열려 있다. 辛坐乙向으로 正東에서 남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통풍이 고려되었던 빙고는 문쪽이 높고 그 반대 쪽이 낮은 봉분형의 외모를 갖고 있다. 봉토 주변에는 자연석을 쌓아 호석을 둘렀다. 또 봉토 정상에는 두 곳에 배기공이 설치 된 것이다. 배기공에는 갸름한 돌을 끼워 外氣와의 조절을 기도하였다. 문은 지표에서 한 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 석계 끝에 있다. 옹벽은 큼직한 돌 세벌을 쌓아 주변을 정리하였다. 옹벽 위로는 큼직한 긴 돌 세 개를 나란히 놓아 천장을 구성하였다. 문얼굴은 지댓돌에 두 가닥의 方柱를 세우고 거기에 이맛돌을 얹었으며 아래 위로 문지두리 흠을 파서 판석비(板石扉)를 달게 되었다. 지금은 석비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닫았다 열었다 하도록 의도되어 있었다. 문짝을 열고 들어서면 步石이 놓여 아래바닥에 내려 서게 된다. 거대한 武砂石形의 거칠게 다듬은 돌로 벽을 쌓고 세틀의 홍예를 바깥쪽으로 판석을 덮어 공간 전체를 차단하였고 앞 뒤 벽은 그에 따라 축조되었다. 홍예돌과 적심이 內觀에서 보는 외주에 설치되었겠지만 봉토로 덮여 있어 그것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배수구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볼 수 없다. 빙고의 규모로는 경주 석빙고, 안동 석빙고보다는 약간 적은 듯하지만 쌓은 기법 등은 같은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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