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246
안성 오춘환 고가는 조선 중종 5년(1510)에 처음 건립된 이래 정무공 오정방(1588~1634), 천파공 오상, 충정공 오두인(1624~1689)에 이르기까지 해주 오씨 명현들을 배출한 유서깊은 곳으로 전해내려 온다. 특히 충정공은 이 집에서 성장하여 나라에 크게 공훈을 떨친 바 있어 우암 송시열이 편액을 써서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덕봉리 252번지에 세워졌던 것으로 조선 효종 1년(1650)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현전하는 건물은 문간채, 안채 겸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간채와 안채 겸 사랑채가 일곽을 형성하고 사당채는 사랑채 뒤쪽에 조금 비껴 별도로 담장을 둘러 일곽을 이루었다. 안채와 사랑을 연속하여 단일채로 구성하였는데 특히 ㄱ자형 몸채에서 일자< 一字 > 부분을 길게 연장하고 중간에 사잇담을 두어 안팎으로 나누는 수법은 연경당과 비견되는 이 가옥의 특징이다. 현재 안채 부분만 담장이 둘려져 있고 사랑 부분은 주변에 아무런 경계없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데, 원래 외곽에 별도의 행랑채나 문간채, 담장 등이 있어 가옥 외부와 경계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향후 정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안채 부분의 구성은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사랑쪽으로 건너방을 두고 ㄱ자로 꺾이는 부분에는 안방, 날개 부분에는 부엌과 부엌광을 두었다. 날개부는 홑집 맏걸이구조로 하여 지붕을 낮추고 전면은 창호와 벽면 위주로 매끈하게 구성하여 맞은 편 담장과 함께 세로로 긴 마당을 형성함으로써 엄정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공간을 구성하였다. 사랑 부분은 전면과 측면에 연속하여 툇마루를 구성하고 기단을 높게 만들어 개방성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실제 규모에 비해 대단히 장중한 느낌을 갖게 된다. 전체적인 목재 푼수와 치목 상태, 사랑 전면 모죽임 팔각기둥과 난간, 안채 건너방 앞 툇마루, 부엌날개부의 다락과 창호, 뒤란쪽 찬장 구성 등의 수법은 목수의 안목과 솜씨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본 가옥의 배치 및 구성과 함께 높이 평가해야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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