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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청원사대웅전 - 청원사의 약간 높은 대지 중앙에 자리잡은 주불전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안성시 원곡면 성은리 397

청원사< 淸源寺 >는 안성군 원덕면과 양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천덕산< 天德山 >에 위치한 작은 산지가람< 山地伽藍 >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용주사< 龍珠寺 >의 말사이다. 사적기가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없으나 1974년에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의 개금불사< 改金佛事 >때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1280년(고려 충렬왕 6)에 국왕이 국태민안을 위하여 발원한 사경< 寫經 >과 함께 '아진견불자< 我鎭見佛者 > 청원사일동< 淸願寺一同 >'이라 묵서로 쓴 비단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 13세기에는 이미 국가의 원찰< 願刹 >로 경영되고 있었으며 사명< 寺名 >을 '청원사< 淸願寺 >'라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2년에는 경내의 석축을 보수하였고 1998년에는 요사를 보수하고 산신각< 山神閣 >을 이건하였으며 정문< 正門 >을 건립하였다. 성은리에서 작은 저수지를 지나 동쪽으로 난 산길로 약 1㎞ 정도 올라가면 나지막한 산 중턱의 경사지에 청원사< 淸源寺 >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산의 정상 쪽으로 더 올라가면 옛 절터인 망해암< 望海庵 > 터가 있다고 전해지나 현재 군사작전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확인하지 못하였다. 사역< 寺域 >은 그리 넓지 않은데 약간 높은 대지 중앙에 주불전인 대웅전이 남향하여 위치하였고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의 맞은편에 ㄱ자형 요사< 寮舍 >가 역시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앞쪽에 정문이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 동쪽에는 근래에 지은 요사가 있으며 대웅전 바로 서쪽에는 원래 산신각< 山神閣 >이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근래 이를 대웅전 서북쪽으로 옮겨 별도의 영역을 이루도록 하였다. 대웅전 석축 앞에는 조선시대의 7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6호)이 주축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석축 위 동쪽에는 안제선사< 安諦禪師 >의 부도< 浮屠 >라고 전해 내려오는 석조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데 정면 각 주칸과 측면 중앙칸은 영조척< 營造尺 >으로 8자씩이고 측면의 협칸은 4자씩으로 매우 규모가 작다. 기단< 基壇 >은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것이며 초석< 礎石 >도 자연석 덤벙주초이다. 전면의 기둥은 약한 배흘림 형식으로 치목하였고 창방< 昌枋 >은 중앙부를 배부르게 다듬은 것이며 기둥 머리 부분은 평방< 平枋 > 폭에 맞추어 편수깎기하였다. 후면의 기둥은 원주< 圓柱 > 또는 팔각주< 八角柱 >로 단면도 매우 작고 흘림도 거의 없다. 공포< 공包 >는 전후면에만 배열되었는데 전면과 후면의 형태가 다르다. 전면공포는 다포계< 多包系 > 형식으로 각 주칸마다 1구씩의 공간포< 空間包 >를 두었고 후면에서는 간단한 출목익공 형식으로 처리하였다. 전면 공포의 제공< 諸工 > 외단은 앞으로 길게 뻗은 소위 앙서< 仰舌 >를 중첩하고 그 위에 주상포< 柱上包 >에서는 보머리, 공간포에서는 운공< 雲工 >을 두었으며 내단은 주상포와 공간포 모두 교두형< 翹頭形 >으로 처리하였다. 첨차< 첨遮 >는 일반적 예와 같이 대소첨차 모두 양끝에만 소로< 小로 >를 두는 2소로식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대첨차 가운데에는 양끝과 중간에 소로를 설치한 4소로식 첨차가 있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었고 가구< 架構 >는 평5량가이다. 대들보는 단면이 약간 배부르게 다듬은 것이고 종보는 대들보에 비해 단면이 매우 작다. 특이한 점은 외부로 드러난 보머리< 樑頭 >의 위치와 내부의 대들보< 大樑 >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의 보머리는 헛보머리라 할 수 있다. 중대공은 동자주 형식이고 종대공은 판대공으로 파련을 초각하였다. 내부에는 후벽쪽에 기대어 수미단< 須彌壇 >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가삼존불< 釋迦三尊佛 >을 봉안하였으며 불상 위에는 간단한 운궁형의 닫집을 설치하였다. 천장은 현재 연등천장이나 원래 우물천장이 가설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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