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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봉송언신영정 - 조선중기 공신도상의 형식을 보이는 상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85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 보관중인 송언신< 宋彦愼 >(1542~1612)의 영정은 조선중기 공신도상의 형식을 보이는 상으로 화면의 오른편 상단에는 '만역삼십이년< 萬歷三十二年 > 갑진< 甲辰 > 선종< 宣宗 > 조선무공신이조판서송언신< 朝宣武功臣吏曹判書宋言愼 >'이라는 표제가 있다. 또한 오른편 하단에는 선조께서 친히 수서로 교시한 글이 있고, 왼편 하단에는 정조께서 어람하고 친히 쓰신 화상찬이 있다. 작품의 상태는 화견< 畵絹 >이 조금씩 떨어져 나간 곳이 군데군데 있고 채색이 떨어져 나간 곳이 보이기도 하여 보존상태가 그리 좋은 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작품에 수리를 하거나 가필한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아 원작이 가지는 작품성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송준< 宋駿 >(1564~1643)의 반영< 半影 > 3점은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모두 같은 크기의 작품으로 종가측에 따르면 평안< 平顔 >, 취안< 醉顔 >, 노안< 怒顔 >의 3가지 안색으로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축< 軸 >으로 표구되어 있으며 구김이 가긴 했으나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송언신상< 宋言愼像 >은 오사모< 烏紗帽 >에 쌍안< 雙雁 >과 모란 구름문의 흉배가 있는 구름문이 있는 단령을 입고 삽금대를 한 좌안칠분면의 전신교의 좌상으로 공수한 소매 사이로는 흰색의 옷소매가 보이고 단령의 트임 사이로는 첩리< 帖裏 >와 과< 跨 >가 그 위로는 삼각형인 단령의 끝이 보인다. 흑화를 신은 양 발은 족좌대 위에 '八'자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았고 그 아래에는 화려한 채전이 깔려 있다. 이와같이 흑단령에 운안문< 雲雁紋 >의 흉배와 삽금대< 鈒金臺 >를 하고 있는 점은 정2품의 품계에 부합하는 조선중기의 관복형식이며 좌안칠분면의 자세나 오른쪽에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단령 끝자락과 채전등은 1604년의 여러 공신도상들의 양식에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 수법을 보면 안면은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오악< 五岳 >부분에 선염한 흔적이 있고 수염은 터럭 하나하나까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흉배와 채전등은 채색으로 섬세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송언신의 영정은 비록 보존상태가 좋지않아 박락된 부분이 군데군데 있기는 하지만 그 형식이나 표현양식으로 보아 1604년에 책봉된 선무공신< 宣武功臣 >, 호성공신< 扈聖功臣 >, 청난공신< 淸難功臣 >과 같은 범주에 드는 상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상은 조선중기 초상화와 전형적인 예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3점의 작품은 모두 두 손은 공수한 채 매우 높은 사모를 쓴 좌안 7분면의 반영을 수묵과 담채로 그려낸 것으로 사모형태는 조선 후기 특히 숙종조의 형식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인물의 표현법은 안면은 비교적 가늘고 부드러운 필치이나 수염은 가늘지만 빠르고 대담하며 옷주름은 궐두묘 양식의 거칠은 필치로 그려냈다는 것이 공통된 특징으로 보인다. 또한 3가지 안색을 분명히 구분하여 알 수는 없지만 눈매가 좀 굴곡지고 눈꼬리가 보다 치켜 올라가 노안< 怒顔 >으로 생각되는 작품은 사모에만 약간의 농담변화를 주었는데 반하여 다른 두 작품은 옷주름 부근에도 약간의 담채와 수묵으로 음영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며 과장되고 재빨리 그려낸 듯한 표현법은 같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세 작품은 모두 조선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되며 인물을 3가지 안색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수묵담채의 활달한 필치로 그려낸 초상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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