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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조광조묘및신도비 - 문정공조광조묘및신도비(文貞公趙光祖墓및神道碑)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수지읍 상현리 산55-1

정암 조광조< 趙光祖 >의 묘소는 수지면 상현리(서원말)에 있다. 묘는 정경부인< 貞敬夫人 >으로 추증된 이씨< 李氏 >와 합장한 것이다. 묘 앞에는 대리석으로 묘표와 평상석·향로석·좌우에는 망주석·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선조18년(1585)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이며 높이 244㎝, 폭 93㎝, 두께 34㎝의 규모이다. 장방형 비좌 에는 국화문이 조각되어 아무런 치장이 없는 품격 높은 비신과 조화를 이루었다. 비 앞면 상단에는 전자< 篆字 >로「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 文貞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 >」이라 횡서< 橫書 >했다.
신도비문은 노수신< 盧守愼 >이 짓고, 이산해< 李山海 >가 글씨를 썼으며, 김응남< 金應南 >이 전< 篆 >을 썼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종때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 孝直 >, 호는 정암< 靜庵 >, 본관은 한양< 漢陽 >이다. 김굉필 에게 수학< 修學 >하였다. 중종 5년(1510) 진사, 중종 10년(1515) 알성문과< 謁聖文科 >에 급제한 뒤 전적< 典籍 >·감찰을 역림하였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 를 실현케 했고, 소격서< 昭格署 >의 폐지를 단행케 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케 하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여 훈구파< 勳舊派 >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의 남곤 < 南袞 >·심정< 沈貞 >등이 무고< 誣告 >하여 능주< 凌州 >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사사< 賜死 >되었다. 선조< 宣祖 > 초에 신원< 伸寃 >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시호는 문정이다. 문집으로 「정암집< 靜庵集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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