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군 중부면 928
행궁지< 行宮址 >는 산성호텔 뒷편 구릉< 丘陵 >이 시작되는 약간 경사진 터에 위차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시< 日帝時 >까지만 해도 면사무소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남한지< 南漢誌 >』에 따르면 ‘인조가 행전< 行殿 >에 임어< 臨御 >하였으며 숙종과 영조, 정조가 영릉< 寧陵 > 참배시 이곳에 머물렀고 유수< 留守 >의 아문< 衙門 >이 있는 곳이 아니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후대에는 이곳에서 유수가 집무< 執務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행궁지는 상중하의 3단< 段 >으로 나뉘어 있는데 맨 윗단을 상궐< 上闕 >터, 아랫쪽 2단을 하궐< 下闕 >터라 부르고 있다. 현재 상궐터에는 내행전지< 內行殿址 >로 추정되는 유구< 遺構 >가 남동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서측에는 행각지< 行閣址 >로 추정되는 유구< 遺構 >가 북동향으로 놓여있다. 하궐터는 다시 상하의 2단< 段 >으로 나뉘어 있는데 윗쪽 단에만 초석< 礎石 >이 노출되어 있으며 아랫단에는 건물지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내행전지< 內行殿址 >는 30여 개의 큰 초석과 기단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초석배열로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이나 주칸거리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2칸의 본체< 本體 >에 사방에 한 칸씩의 퇴< 退 >를 두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북한산성 행궁지의 정전< 正殿 >과 같은 구조이므로 주목된다. 주칸거리는 내진< 內陣 >에서 2,770∼2,800㎜로서 영조척< 營造尺 >으로 9척< 尺 > 내외이고 외진< 外陣 >에서 2,003∼2,110㎜ 정도로 영조척으로 6.5척< 尺 > 정도 된다.
초석의 크기는 내진에서 각 변 720㎜ 내외이고 외진에서 520 ×700㎜ 정도이다. 행각지< 行閣址 >는 초석열< 礎石列 >이 교란되어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정면 9칸, 측면 2칸의 규모로서 정면의 길이가 측면에 비해 상당히 길다. 주칸거리는 정면칸에서 2,250∼2,270㎜로 영조척< 營造尺 > 7척< 尺 > 내외로 균등하게 배열하였으며 측면칸에서는 앞쪽에 퇴< 退 >를 둔 듯한데 전면쪽이 1,040㎜로 3척< 尺 >, 후면쪽이 2,520㎜로 8척< 尺 >으로 추정된다. 초석< 礎石 >은 부정형< 不定形 >으로 크기가 일정치 않으나 대략 500 ×800㎜ 정도이다. 남한산성< 南漢山城 > 행궁< 行宮 >은 북한산성< 北漢山城 > 행궁< 行宮 >, 화성행궁< 華城行宮 >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궁의 하나이다.
기록으로 볼 때 남한산성 행궁은 북한산성 행궁지보다 규모는 더 크고 내외의 행전< 行殿 >과 부속건물< 附屬建物 >, 누각< 樓閣 > 뿐아니라 종묘< 宗廟 >와 사직< 社稷 > 등을 봉안할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으며 북한산성과 달리 인조와 숙종, 영조, 정조 등 역대 왕들이 남한산성< 南漢山城 >의 군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으며 이 행궁< 行宮 >에 머무는 등 실제로 사용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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