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
창녕읍 교동 논가운데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비.
건립연대는 810년(신라 헌덕왕 2년=元和 5년=唐 憲宗王 5년)으로 지금부터 1200년전 높이 158cm, 너비 45cm, 두께 167cm.
붉은 색이 도는 화강암의 이 비는 일명 인양사비상(仁陽寺碑像)이라고도 하는데 인양사의 금당 후편에 세워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면과 양측면은 비문을 새기고 뒷면 전부에 우아한 기법으로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입상이 10cm정도 두텁게 양각되어 있다.
귀부와 이수대신에 장방형의 대석(臺石)과 옥개형의 개석(蓋石)을 얹은 이형(異形)의 비이다.
앞면의 비문은 비제(碑題)없이 10행, 각행 28자를 글자크기 4cm의 육조체(六朝體)로 새겼으며, 그 내용은 혜공왕 7년(771)에서 헌덕왕 2년(810)까지 40년간 사원의 건물, 탑, 불상, 종 등을 조성한 경비의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는 인양(仁陽), 봉덕(奉德), 빙흥(永興), 천엄(天嚴), 보적(寶藏), 원지(苑池), 상락(常樂), 대곡(大谷) 등의 절 이름이 보이는데 봉덕사(奉德寺), 빙흥사(永興寺), 천엄사(天嚴寺), 보적사(寶藏寺) 등 4절은 경주에 있는 절이므로 나머지 것도 이 지방에 있던 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문은 전면 및 좌우면에 해서(楷書)로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승상(僧像)이 부조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마멸이 심하여 분명치 않으나 인양사(仁陽寺)와 관련이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탑, 金堂, 료사(寮舍) 등의 조성연대와 식급(食給)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신라 혜공왕 7년(771) 인양사 종을 주조한 일로 부터 비석을 세운 원화 5년, 즉 신라 헌덕왕 2년(810)까지 40년간에 베풀어진 일의 내용이다.
뒷면의 승상은 사찰조성에 관계된 당시의 고승을 기리기 위해 새긴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승상은 동안의 자비로운 모습이며, 인체를 모방한 부드러운 선이 8,9세기 조각수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이 부근 일대의 전답에서 옛 기와조각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것들은 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로 인정되는 문양들이며 또 유명한 술정리 동탑과 서탑으로 불리는 탑은 여기서 500m쯤 떨어져 있으니 옛날 대가람 유적임에는 틀림없다.
또 이비는 6ㆍ25사변때 피해를 입어 서쪽편과 북쪽 비상에 총탄 흔적이 뚜렷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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