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 사사동 산86-6
조선 선조<宣祖> 때에 문신으로 활약한 한응인(1554∼1614)을 모신 유택이다.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와의 합장묘이며, 장대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방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묘비·혼유석·상석·향로석이 가까이 모여 있고, 묘역 앞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어 있다. 1994년 묘역을 새로 정비하면서 묘비의 기대<基臺> 부분과 상석·향로석·계체석 등의 석물을 교체 설치하였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역의 50m 우측 전방에 위치하는데 우진각지붕형 가첨석<加첨石>(전후면 지붕과 측면 지붕이 만나는 추녀마루 끝에서 모이게 되는 형태의 비석 지붕돌) 비신<碑身>, 기대<基臺>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김류<金류>가 찬<撰>하고 한인급<韓仁及>이 글을 썼으며, 김광현<金光炫>이 전액<篆額>을 써서 인조<仁祖> 20년(1642)에 건립한 것이다. 한응인은 선조 9년(157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이듬해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임금의 말이나 명령을 작성하던 관청)에 뽑혔고, 이어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의 정7품 벼슬)·지평<持平>·정언<正言>·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조선시대 국립 대학인 성균관의 정5품 벼슬)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22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적발하여, 그 공으로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오르고 승지<承旨>를 지냈으며 선조 23년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평양으로 갔다가 제도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조선시대 임금의 명을 받고 사신으로 나가는 재상의 정2품 임시 벼슬)로 임진강 방어에 임하였으나 왜장 가토(가등청정<加藤淸正>)의 유인 작전에 속아 전군이 붕괴하였다. 이에 왕을 뒤따라 행재소<行在所>로 달려가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임명되었다. 요동에 건너가 원병의 급속한 출병을 요구하였고, 이여송<李如松>이 원군을 이끌고 오자 접반관<接伴官>으로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조·호조·병조의 판서를 거쳐 선조 40년 우의정에 올랐다.
조선 선조<宣祖> 때에 문신으로 활약한 한응인(1554∼1614)을 모신 유택이다.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와의 합장묘이며, 장대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방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묘비·혼유석·상석·향로석이 가까이 모여 있고, 묘역 앞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어 있다. 1994년 묘역을 새로 정비하면서 묘비의 기대<基臺> 부분과 상석·향로석·계체석 등의 석물을 교체 설치하였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역의 50m 우측 전방에 위치하는데 우진각지붕형 가첨석<加첨石>(전후면 지붕과 측면 지붕이 만나는 추녀마루 끝에서 모이게 되는 형태의 비석 지붕돌) 비신<碑身>, 기대<基臺>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김류<金류>가 찬<撰>하고 한인급<韓仁及>이 글을 썼으며, 김광현<金光炫>이 전액<篆額>을 써서 인조<仁祖> 20년(1642)에 건립한 것이다. 한응인은 선조 9년(157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이듬해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임금의 말이나 명령을 작성하던 관청)에 뽑혔고, 이어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의 정7품 벼슬)·지평<持平>·정언<正言>·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조선시대 국립 대학인 성균관의 정5품 벼슬)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22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적발하여, 그 공으로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오르고 승지<承旨>를 지냈으며 선조 23년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평양으로 갔다가 제도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조선시대 임금의 명을 받고 사신으로 나가는 재상의 정2품 임시 벼슬)로 임진강 방어에 임하였으나 왜장 가토(가등청정<加藤淸正>)의 유인 작전에 속아 전군이 붕괴하였다. 이에 왕을 뒤따라 행재소<行在所>로 달려가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임명되었다. 요동에 건너가 원병의 급속한 출병을 요구하였고, 이여송<李如松>이 원군을 이끌고 오자 접반관<接伴官>으로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조·호조·병조의 판서를 거쳐 선조 40년 우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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