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산2-1
흔암리 유적은 경기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유적은 흔암리 마을의 구릉 지대에 분포하며 남한강에 인접하여 있다. 1972∼78년에 이루어진 발굴을 통하여 16기에 이르는 집자리가 발굴되었다. 집터는 산의 비탈면을 ㄴ자모양으로 깎아 만들었고, 등고선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집터가 남북 방향으로 마련되었다. 집터의 평면은 긴 네모꼴이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집자리의 규모는 42㎡(길이 10m, 추정 너비 4.2m)에 이른다. 집터 중에는 바닥에 찰흙을 깐 것이 있었으며, 집터와 관련된 화덕 자리나 출입구 시설 또는 저장 구덩이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각 집터에서 조사된 기둥 구멍의 형태는 벽체가 곧게 올라가는 반움집(땅에 얕고 넓은 구덩이를 파고 가장자리에 기둥을 곧게 세워 벽과 지붕을 만든 형태의 집) 모양으로 나타난다. 흔암리 유적에서는 민토기,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입술 부분에 톱니처럼 금니 새겨진 토기), 붉은간토기, 덧띠토기 등이 나왔다. 출토한 석기의 종류도 다양하여 돌화살촉, 반달칼, 그물추, 돌도끼, 바퀴날도끼, 간돌검, 간돌, 돌창끝 등과 같은 목공용, 농경용, 사냥용, 물고기 잡이용 도구가 있다. 12호 집터에서는 여러 종류의 토기 및 석기와 함께 탄화된 벼, 보리, 조, 수수 등의 곡물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흔암리의 청동기인들이 당시에 이미 오곡<五穀>을 농사짓는 단계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흔암리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7세기 전후로 이야기되고 있으나 그 보다 시기가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연산군이 자신의 유흥지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로 금천군 이변의 묘역을 보수할 때 출토되었는데 상단과 하단의 좌측 일부가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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