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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산성 - 망이산의 산봉우리와 능선, 골짜기를 감싸도록 쌓은 성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안성시 일죽면 금산리

중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가운데에 있는 망이산성은 망이산의 산봉우리와 능선 그리고 골짜기를 감싸도록 쌓은 성이다. 포곡식 산성의 한 형태인 망이산성은 남·서·북쪽에 있는 봉우리의 경사진 면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성 안쪽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지대가 낮고, 풍부한 물과 넓은 공간을 갖춘 좋은 지형이다. 산성에서 바깥을 보면 망이산 언저리가 낮은 들판을 이루어서 안성·이천·음성 지역은 물론 용인·진천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매우 좋은 곳이다. 토성<土城>인 내성과 석성<石城>인 외성으로 이루어진 겹성이며, 토성은 백제 때 쌓았고, 석성은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토성은 가장 높은 남쪽의 봉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현재 밝혀진 길이는 250m쯤 되고 북쪽에 문터로 짐작되는 자리가 있다. 특히 흙을 쌓을 때 버팀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자를 대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석성은 능선과 봉우리의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다. 둘레는 약 2㎞로 남북 방향이고 성벽 안쪽의 언저리에는 성 안길이 있다. 외성에서는 3곳에 걸쳐 문터가 확인된 것을 비롯하여, 산등성이 윗부분에 쌓은 치성<雉城>이 5곳 발견되었으며 건물터도 여러 곳 확인되었다. 특히 치성은 성벽에 맞물려 쌓은 것과 덧대어 쌓은 것이 모두 발견되었다. 토성 안의 높은 곳에는 봉수터가 있는데 생김새는 직사각형이고 자기와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 봉수는 동래·충주 등을 거쳐 올라오는 직봉<直烽>과, 남해·진주 등에서 올라오는 간봉<間烽>을 서울 남산(목멱산)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걸치는 유구<遺構>와 유물이 발굴되어 망이산성의 성격과 역할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물이 이처럼 높은 지역에서 발굴된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사회와 초기 국가의 발달 과정을 밝히는 데 이 곳이 갖는 중요성을 잘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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