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산46-1
조선 인조<仁祖>의 셋째 아들이며, 효종<孝宗>의 동생인 인평대군 이요<李요>(1622∼1658)를 모신 유택이다. 묘역은 곡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단분으로 원형의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다. 복천부부인<福川府夫人> 오씨<吳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 앞에는 효종 9년(1658)에 건립된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가까이 있다. 상석을 받치는 고석<鼓石>에는 사면에 양각으로 사자상<獅子像>을 조각해 놓았다. 상석에 근접하여 좌우로 동자상이 위치하며 전방에는 장명등이 있다.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역 후면 우측에는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석물과 묘역 우측 하단에는 제물<祭物>을 올릴 때 사용하는 판석이 놓여 있다. 신도비는 묘역 입구에 세워졌는데 높이 325㎝의 거대한 규모이며 귀부<龜趺>와 이수<이首>는 생동감이 넘치는 정교한 모습이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1,800여 평의 규모로 매우 장대한 편이다. 특히 묘역 하단에는 효종·숙종<肅宗>·영조<英祖>·정조<正祖>의 어제친필<御製親筆>로 된 치제문비<致祭文碑>를 포함해서 2기의 치제문비가인평대군의 업적을 예찬하고 있다. 인평대군은 인조 18년(1640) 볼모로 심양<瀋陽>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이후 인조 28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왕자의 신분으로 병자호란 후의 국난 극복에 헌신하였다.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났으며 제자백가<諸子白家>의 학문에도 정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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