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7
'함공성'·'양근성'·'함씨대왕성' 등으로도 불리우며, 용문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만들었졌다. 성터로 올라가는 길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사나사<舍那寺>가 있는 절골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골의 북서쪽 능선에 있는 큰골 마을에서 시작되는 산길이다. 한편 사나사의 아래쪽에는 성공혈<成公穴>이라는 큰 바위굴이 있는데 여기에서 삼한 초기 함왕<咸王> 주악<周鍔>이 탄생하였고,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고 부근을 정복하였으나 뒤에 삼한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몽고의 4차 침입 때 몽고군이 쳐들어 오자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신을 하였다는 옛 기록이 있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높이 1.6m 안팎의 성벽이 현재 700m쯤 남아 있다. 북동쪽의 건물터로 보이는 넓은 터에는 주춧돌로 이용된 편평한 돌, 기와 조각 등이 널려 있다. 또 건물터 옆에는 성 안에서 유일하게 물을 구할 수 있는 우물이 있다. 이 건물터에서 서쪽을 보면 멀리 한강 너머 백병산이, 가까이는 양평읍과 옥천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이곳이 한강을 중심으로 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함공성'·'양근성'·'함씨대왕성' 등으로도 불리우며, 용문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만들었졌다. 성터로 올라가는 길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사나사<舍那寺>가 있는 절골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골의 북서쪽 능선에 있는 큰골 마을에서 시작되는 산길이다. 한편 사나사의 아래쪽에는 성공혈<成公穴>이라는 큰 바위굴이 있는데 여기에서 삼한 초기 함왕<咸王> 주악<周鍔>이 탄생하였고,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고 부근을 정복하였으나 뒤에 삼한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몽고의 4차 침입 때 몽고군이 쳐들어 오자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신을 하였다는 옛 기록이 있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높이 1.6m 안팎의 성벽이 현재 700m쯤 남아 있다. 북동쪽의 건물터로 보이는 넓은 터에는 주춧돌로 이용된 편평한 돌, 기와 조각 등이 널려 있다. 또 건물터 옆에는 성 안에서 유일하게 물을 구할 수 있는 우물이 있다. 이 건물터에서 서쪽을 보면 멀리 한강 너머 백병산이, 가까이는 양평읍과 옥천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이곳이 한강을 중심으로 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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