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군포시 산본동 산158-1
조선 성종<成宗>의 셋째 아들 안양군 이행<李행>을 모신 유택이다.
조선 성종<成宗>의 셋째 아들 안양군 이행<李행>을 모신 유택이다.
묘역은 사성<沙城>으로 둘러싸여 있고,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능성구씨<陵城具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상석 가까운 곳에 좌우로 허리 부분까지만 형상화한 고졸<古拙>한 형태의 동자상이 있다. 상석의 전방에는 장명등이 있고,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망주석·석양<石羊>·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어 있다. 묘비는 봉분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데, 비신<碑身>의 측면에 '건좌병진<乾座丙辰>'이라는 묘소의 방향과 건립 연대의 간지<干支>가 기록되었으나 연호가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묘역 앞에 위치한 신도비는 신종묵<愼宗默>이 찬<撰>한 원래의 비문을 1976년 이일형<李一珩>이 쓰고 김충현<金忠顯>이 전액<篆額>을 하여 건립하였다. 이 묘역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라 고종<高宗> 32년(1895) 양주에서 묘역의 석물과 함께 이장해 온 것이라고 한다.
안양군은 성종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貴人鄭氏>이다. 연산군<燕山君>의 생모인 폐비 윤씨<尹氏> 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정씨와 엄씨<嚴氏>의 참소에 있다고 판단하여 연산군 10년(1504) 어머니와 봉안군<鳳安君>(성종의 6남)과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1506년 중종<中宗>이 즉위하면서 복작<復爵>되었고, 중종 15년(1520)에 부인의 상소에 따라 좋은 곳을 골라 다시 장례 지내도록 교지가 내렸다. 따라서 이 묘역 석물의 조성 시기는 중종 15년경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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