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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생묘 - 조선 선조∼인조 연간의 문신 이준을 모신 유택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양주시 남면 신산리 1-1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연간의 문신 이준(1545∼1624)을 모신 유택이다. 봉분은 부인과의 합장묘로 쌍분이다. 봉분은 화강암 호석<護石>을 원형으로 둘렀다. 쌍분의 중앙 앞에 월두형<月頭形> 묘비·상석·향로석이 밀집되어 있고, 상석에 가깝게 좌우로 동자상이 있다. 상석을 중심으로 묘역 좌우에는 망주석·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어 있다. 묘역 우측에는 근래에 건립된 묘비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묘비를 제외하고 비교적 원형의 석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준은 선조 원년(1568)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주서<注書>·정언<正言>·헌납<獻納>을 거쳐 진주목사<牧使>·의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선조 22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도승지<都承旨>로서 죄인을 다스리는데, 공을 세워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전성군<全城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운향사<運餉使>가 되어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 조달 책임을 맡았으나 병으로 은퇴하였다. 그 뒤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춘천부사<府使>를 거쳐 예조·병조의 참판<參判>을 지내고 선조 33년 대사간<大司諫>이 되었으나 북인<北人> 홍여순<洪汝諄>의 일파로 몰려 한때 파직되었다. 그 뒤 안동부사·경주부윤<府尹> 등의 지방관을 거쳐 광해군<光海君> 때 좌참찬<左參贊>·형조판서<判書>·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광해군 7년 개성부유수<留守>가 되었다.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고 인목대비<仁穆大妃> 유폐 사건 등 정사가 어지럽자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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