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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현선생묘 - 덕망이 높아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이맹현 선생의 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45-1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에 문신으로 활약한 이맹현(1436∼1487)을 모신 유택이다. 봉분은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와 쌍분이다. 쌍분 앞에는 각각 묘비·상석·향로석을 배치하고, 묘역 좌우에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옛 것 2기와 새 것 1기로 모두 3기가 있는데 좌우 옛 묘비의 비문은 허침<許琛>이 찬<撰>하여 성종 19년(1488)에 건립한 것이다. 쌍분의 중앙에 있는 오석제<烏石制> 새 묘비는 1956년 종중<宗中>에서 묘역을 정비할 때 원래의 비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써서 건립하였고, 위의 상석과 향로석도 새로이 교체한 것이다. 이맹현은 세조 2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세조 6년에는 춘당시<春塘試>에 급제한 뒤 성균관주부<成均館注簿>에 제수되어 사신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세조 10년에는 수찬낭관<修撰郎官>으로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수하는 데 참여하였다. 성종 6년 경회루 중수 논의가 있자, 백성들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때에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하는 것을 금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종 8년에는 직제학<直提學>에 오르고, 곧 이어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어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에 올랐다. 그 후 황해도관찰사<觀察使>가 되어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되었고, 이어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냈다. 그는 덕망이 높아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문장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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