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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장군묘 -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전투에서 큰 업적을 세운 박진 장군 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산149-2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전투에서 큰 업적을 세운 박진(?∼1597)장군을 모신 유택이다. 묘역은 민간인 통제선 내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 앞의 묘비가 있던 자리에 비신<碑身>은 없고 비를 받치는 장방형의 기대<基臺>만 남아 있는데 후대에 손실된 것으로 보인다. 기대 앞에는 상석<床石>과 근래에 설치한 향로석이 있는데 상석에는 명문<銘文>이 있던 흔적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불가능하다. 상석의 전방 좌우에는 문인석이 있다. 봉분의 우측에는 1987년에 후손이 건립한 오석제<烏石制> 묘비가 설치되어있다. 박진은 무신 집안 출신으로 비변사<備邊司>에 무신으로 있다가 선조<宣祖> 22년(1589) 심수경<沈守慶>의 천거로 등용되어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선조 25년 밀양부사<密陽府使>가 되었다. 같은 해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동래 등이 차례로 함락되는 전황속에서 싸우다 패하여 포위되자 밀양부를 소각하고 후퇴하였다. 이후 경상좌도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로 임명되어 나머지 병사를 수습하고, 별장<別將> 권응수<權應銖>를 파견하여 영천의 의병을 지휘하게 하여 영천성을 탈환하였다. 이어서 안강에서 16개 읍의 병력을 모아 경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한 달 뒤에 군사를 재정비하여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로 경주성을 다시 공략, 많은 수의 왜적을 베고 성을 탈환하였다. 이 밖에 선조 26년에 독포사<督捕使>로 밀양·울산 등지에서 전과를 올렸고, 벼슬은 경상우도·전라도·황해도병마절도사를 거쳐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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