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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곤선생묘 - 평안도관찰사로 치적을 남겼던 윤곤 선생의 유택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산81-1

조선 세종<世宗> 때에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치적<治績>을 남겼던 윤곤(?∼1422)을 모신 유택이다. 봉분은 근래에 원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묘비는 봉분 앞의 월두형<月頭形> 묘비와 봉분 우측의 가첨석형<加첨石形> 묘비 2기가 배치되어 있는데 후자는 고종<高宗> 6년(1869)에 건립된 것이다. 월두형 묘비 앞의 상석과 향로석은 근래에 교체된 것이다. 상석 앞 좌측으로 장명등이 있고, 좌우로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역 아래에는 신도비가 있는데 팔작지붕형 가첨석·비신·기대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윤상익<尹相翊>이 찬<撰>하고 윤조영<尹祖榮>이 글을 쓰고 윤용식<尹容植>이 전액<篆額>을 쓴 것이다. 윤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동생 향<珦>과 함께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 정종<正宗> 2년(1400) 동지총제<同知摠制>로서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에게 가담하여 협력한 공으로, 태종<太宗> 원년(1401)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다. 태종 6년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로 있을 때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파평현에 유배되었다가 세종<世宗> 즉위년(1418) 세종이 즉위하자 평안도관찰사로 기용되어 기생의 풍류를 폐지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다. 이로 인해 이듬해 이조판서<吏曹判書>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고, 그 뒤 우참찬<右參贊>까지 역임하였다. 성격이 너그럽고 후하며 풍채가 매우 좋아 '복옹<福翁>'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대중교통]
서울역에서 922번(좌석)이나 불광동터미널에서 909번(좌석)버스를 타고 금촌터미널에서 하차
32번 이나 15번버스를 타고 파주우체국에서 하차(도보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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