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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선생묘 - 조선의 개국공신인 김균을 모신 유택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광주군 오포면 능평리 산89-1

조선의 개국공신인 김균(?∼1398)을 모신 유택이다. 묘역은 곡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앞부분에 장대석으로 호석<護石>을 쌓아 놓았다. 봉분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을 위치한다. 상석과 장명 등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석물 중 상석·향로석·장명등은 근래에 새로이 설치한 것이다. 상석의 좌측에는 묘비가 있으며, 묘역의 전방 약 80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송병선<宋秉璿>이 찬<撰>하고 윤용구<尹用求>가 글을 쓰고 김영한<金寧漢>이 전액<篆額>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묘역이 실전<失傳>되었다가 이 묘역이 있던 고을 유수<留守>로 온 후손 김사목<金思穆>이 수소문하여 찾았다고 기록되어, 현재 묘역의 건립시기는 18세기 후반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묘비 역시 그 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김균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9년(1360)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고 공양왕<恭讓王> 때의 관직은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이르렀다. 조선의 개국 때에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3등 15명 중 제 2인으로 책훈되어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의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계林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가족 중에 태조<太祖>의 공신이 많이 배출되어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진급 정치 집단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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