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군 소흘읍 27
이 곳은 조선 세조<世祖>에게 폐위<廢位>당한 단종<端宗>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하여 처형된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분인 유응부<兪應浮>와 한남군<漢南君> 이어<李어>, 그리고 병사<兵使> 양치<楊治>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신 제단이다. 이 곳에는 유허비<遺墟碑>를 비롯한 설단비<設壇碑>와 비각<碑閣>이 있다. 유허비는 영조<英祖> 22년(1746)에 조성되었으며, 이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은 정면, 측면 각 1칸 규모인 정방형의 사모지붕 형태이다. 지붕의 중앙에는 절병통을 올려 놓았고 사방 측면의 기둥 사이에는 하단에서 반가량 벽을 치고 그 이상은 문살모양의 살창을 조성했다. 중앙에는 이분합<二分合>의 판문<板門>을 달아 놓았다. 비단<碑壇>은 외벌대로 단을 쌓고 대지를 마련하여 3기의 비석을 세웠는데 중앙에 '총관유응부선생<摠管兪應浮先生>'의 비석이 있고 그 좌우로 '병사양치선생<兵使楊治先生>', '한남군이어선생<韓南君李어先生>'의 석비 하나씩을 세웠다. 매년 가을에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이 곳은 조선 세조<世祖>에게 폐위<廢位>당한 단종<端宗>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하여 처형된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분인 유응부<兪應浮>와 한남군<漢南君> 이어<李어>, 그리고 병사<兵使> 양치<楊治>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신 제단이다. 이 곳에는 유허비<遺墟碑>를 비롯한 설단비<設壇碑>와 비각<碑閣>이 있다. 유허비는 영조<英祖> 22년(1746)에 조성되었으며, 이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은 정면, 측면 각 1칸 규모인 정방형의 사모지붕 형태이다. 지붕의 중앙에는 절병통을 올려 놓았고 사방 측면의 기둥 사이에는 하단에서 반가량 벽을 치고 그 이상은 문살모양의 살창을 조성했다. 중앙에는 이분합<二分合>의 판문<板門>을 달아 놓았다. 비단<碑壇>은 외벌대로 단을 쌓고 대지를 마련하여 3기의 비석을 세웠는데 중앙에 '총관유응부선생<摠管兪應浮先生>'의 비석이 있고 그 좌우로 '병사양치선생<兵使楊治先生>', '한남군이어선생<韓南君李어先生>'의 석비 하나씩을 세웠다. 매년 가을에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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