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산1
이 성터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 이래 수원의 읍성으로 사용되다가 조선< 朝鮮 > 정조< 正祖 > 13년(1789)에 정조의 생부< 生父 >인 사도세자< 思悼世子 >의 능< 陵 >을 양주< 楊州 > 배봉산< 拜峰山 >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새로운 읍성을 쌓을 때까지 사용되었던 토축< 土築 >의 옛 수원< 水原 > 읍성< 邑城 > 자리이다. 이 성에 대해서 옛 문헌에는 둘레가 270보< 步 > 혹은 4.035척< 尺 >이고, 성 안에 두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본래 낮은 산능선< 山稜線 >을 이용하여 계곡 아래의 평지까지 에워싼 포곡식< 包谷式 >이었으나, 성터의 대부분이 무너지고 산능선의 290m 평지 270m 정도가 옛모습을 희미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윗부분이 2m∼2.5m이고, 높이는 4∼5m, 바깥쪽 경사면은 7∼8m인데 동문터 서문터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다. 성벽을 어떤 방법으로 쌓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기와와 그릇이 많이 발견되고, 또 잔존< 殘存 >한 성벽 모습으로 보아 판축< 版築 >이 아니었던가 여겨지고 있다.
이 성터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 이래 수원의 읍성으로 사용되다가 조선< 朝鮮 > 정조< 正祖 > 13년(1789)에 정조의 생부< 生父 >인 사도세자< 思悼世子 >의 능< 陵 >을 양주< 楊州 > 배봉산< 拜峰山 >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새로운 읍성을 쌓을 때까지 사용되었던 토축< 土築 >의 옛 수원< 水原 > 읍성< 邑城 > 자리이다. 이 성에 대해서 옛 문헌에는 둘레가 270보< 步 > 혹은 4.035척< 尺 >이고, 성 안에 두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본래 낮은 산능선< 山稜線 >을 이용하여 계곡 아래의 평지까지 에워싼 포곡식< 包谷式 >이었으나, 성터의 대부분이 무너지고 산능선의 290m 평지 270m 정도가 옛모습을 희미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윗부분이 2m∼2.5m이고, 높이는 4∼5m, 바깥쪽 경사면은 7∼8m인데 동문터 서문터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다. 성벽을 어떤 방법으로 쌓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기와와 그릇이 많이 발견되고, 또 잔존< 殘存 >한 성벽 모습으로 보아 판축< 版築 >이 아니었던가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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