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구산동 64번지
김해시 동북쪽에 있는 盆山의 서남쪽 기슭에 자리한 고분으로 수로왕비릉에서 동북쪽으로 100m∼500m 가량 떨어져 있다. 이 유적은 가, 나의 두 고분군으로 나뉘는데 수로왕비에서 가까운 龜山洞 63-64번지 일대가 '가'고분군이며 멀리 떨어진 구산동 31-2번지 일대의 구릉 정상부가 '나'고분군이다. 각각 2기가 남아 있으며 '가'고분군에는 일제 때에 세워진 '三山里古墳' 푯말이 있고 '나'고분군에는 근래에 세운 구산동고분 푯말이 제각기 세워져 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가'고분군 가운데 1기는 봉분의 크기가 길이 12.8m, 폭 11.5m, 높이 4m로 상당한 대형이고 다른 1기의 봉분이 절반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나'고분군은 2기 모두 봉분이 무너져 흔적만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1기는 지상에 개석(蓋石)이 노출되어 있고 한쪽이 벽이 파괴되어 내부가 들여다 보인다.
1919년에 조사되었다는 삼산리 1호분이란 아마도 '가'고분군의 봉토가 완전한 큰 고분을 가리킨다고 보아지는데 이 1호분은 황혈식석실분으로 석실의 평면은 동서의 길이 2.4m, 남북의 길이 3m의 장방형이며 출입구는 남벽의 서쪽에 설치되어 있다. 4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쌓았으며 좁혀진 천장은 2장의 개석으로 덮었고 석실의 바닥에는 'ㄱ'자 모양의 관대(棺臺)가 있었다고 한다. 두 고분군 모두 할석으로 쌓은 횡혈식 고분이며 석실이며 장축방향도 같은 남북방향으로 출입구는 남쪽에 설치되어 있다. 현재 4기만 확인되어 있지만 주위만 더 많은 고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는 고분의 구조로 보아 6세기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김해시 동북쪽에 있는 盆山의 서남쪽 기슭에 자리한 고분으로 수로왕비릉에서 동북쪽으로 100m∼500m 가량 떨어져 있다. 이 유적은 가, 나의 두 고분군으로 나뉘는데 수로왕비에서 가까운 龜山洞 63-64번지 일대가 '가'고분군이며 멀리 떨어진 구산동 31-2번지 일대의 구릉 정상부가 '나'고분군이다. 각각 2기가 남아 있으며 '가'고분군에는 일제 때에 세워진 '三山里古墳' 푯말이 있고 '나'고분군에는 근래에 세운 구산동고분 푯말이 제각기 세워져 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가'고분군 가운데 1기는 봉분의 크기가 길이 12.8m, 폭 11.5m, 높이 4m로 상당한 대형이고 다른 1기의 봉분이 절반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나'고분군은 2기 모두 봉분이 무너져 흔적만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1기는 지상에 개석(蓋石)이 노출되어 있고 한쪽이 벽이 파괴되어 내부가 들여다 보인다.
1919년에 조사되었다는 삼산리 1호분이란 아마도 '가'고분군의 봉토가 완전한 큰 고분을 가리킨다고 보아지는데 이 1호분은 황혈식석실분으로 석실의 평면은 동서의 길이 2.4m, 남북의 길이 3m의 장방형이며 출입구는 남벽의 서쪽에 설치되어 있다. 4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쌓았으며 좁혀진 천장은 2장의 개석으로 덮었고 석실의 바닥에는 'ㄱ'자 모양의 관대(棺臺)가 있었다고 한다. 두 고분군 모두 할석으로 쌓은 횡혈식 고분이며 석실이며 장축방향도 같은 남북방향으로 출입구는 남쪽에 설치되어 있다. 현재 4기만 확인되어 있지만 주위만 더 많은 고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는 고분의 구조로 보아 6세기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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