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보문동 752-2
진평왕릉 남쪽과 보문사지 사이의 논 가운데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이다.
오히려 보문사지 쪽으로 더 가깝지만, 소속 사찰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높이 164cm인 지주는 지주아랫부분이 상당히 매몰되어 있어서 간대나 기단의 유무와 최하부의 구조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며 동서로는 62cm 의 간격을 두고 두기둥이 마주 서 있다.
정상부분 안쪽에 있는 너비 13cm 의 큼직한 간구(竿溝)는 당간을 고정시켰던 장치이다.
이 당간지주 상부 외측면에 설정된 방형구획 안에는 지름 47cm의 연화문(蓮花文)이 조각되어 있다. 이와같이 당간지주에 연화문을 조각하여 장식한 예는 이곳 외는 아직 없다.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이후로 생각되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 중에서 가장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당간지주와 비교하여 볼 때 연꽃잎의 장식이라든가 규모가 작고 단아한 것, 돌을 다룬 솜씨나 양식이 배우 정교하다.
진평왕릉 남쪽과 보문사지 사이의 논 가운데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이다.
오히려 보문사지 쪽으로 더 가깝지만, 소속 사찰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높이 164cm인 지주는 지주아랫부분이 상당히 매몰되어 있어서 간대나 기단의 유무와 최하부의 구조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며 동서로는 62cm 의 간격을 두고 두기둥이 마주 서 있다.
정상부분 안쪽에 있는 너비 13cm 의 큼직한 간구(竿溝)는 당간을 고정시켰던 장치이다.
이 당간지주 상부 외측면에 설정된 방형구획 안에는 지름 47cm의 연화문(蓮花文)이 조각되어 있다. 이와같이 당간지주에 연화문을 조각하여 장식한 예는 이곳 외는 아직 없다.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이후로 생각되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 중에서 가장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당간지주와 비교하여 볼 때 연꽃잎의 장식이라든가 규모가 작고 단아한 것, 돌을 다룬 솜씨나 양식이 배우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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