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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현전적지 - 동학농민군이 관군( 官軍 )을 크게 물리친 격전지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2

이곳은 동학농민운동< 東學農民運動 >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 官軍 >을 크게 물리친 격전지이다. 이곳에서의 승리는 동학농민군의 혁명운동< 革命運動 >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부군수< 古阜郡守 > 조병갑< 趙秉甲 >의 학정에 대항하여 전봉준< 全琫準 > 선생의 지휘하에 제포구민< 除暴救民 >·보국안민< 輔國安民 >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군은 고부 백산< 白山 >에 집결해 있다가 조선< 朝鮮 > 고종< 高宗 > 31년(1894년 갑오< 甲午 >) 5월 11일(음 4월 7일) 새벽에 인근 고을의 농민군과 함께 이곳에 진을 치고 있던 전주감영< 全州監營 >의 관군을 기습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로부터 동학농민군의 기세가 높아져 정읍< 井邑 >, 흥덕< 興德 >, 고창< 高敞 >, 무장< 茂長 > 등 각 현< 縣 >으로 그 세력이 확장되었으며, 나아가 전주< 全州 >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으로 청·일< 淸·日 >의 군대가 개입하게 되자, 외세< 外勢 >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하여 동학농민군은 정부와 전주< 全州 >에서 화약< 和約 >을 맺고 철수하여 전라도< 全羅道 > 53개 지역에 집강소< 執綱所 >를 설치하고 개혁정치< 改革政治 >를 추진하였다. 그러다가 청일전쟁< 淸日戰爭 >을 일으킨 일본군의 침략이 뚜렷해지자 농민군은 일본군의 침략에 항쟁< 抗爭 >하기 위하여 다시 일어나 각지에서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우세한 신무기< 新武器 >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공주< 公州 > 우금치전투에서 패한 뒤로 그 세력이 크게 떨어지고, 전봉준 선생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순국< 殉國 >하게 되자 정치의 개혁을 주장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동학농민운동에서 보여준 개혁정신< 改革精神 >과 민족자주정신< 民族自主精神 >은 그 이후 민족독립운동< 民族獨立運動 >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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