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용강동 1132-2
이곳 용강동 평지에 있는 이 무덤은 '개무덤', '고려장'으로 불려오면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경주의 향토사학가< 鄕土史學家 >들의 모임인 신라문화동인회< 新羅文化同人會 > 회원들의 노력으로 1986년 6월 문화재연구소< 文化財硏究所 > 경주고적발굴조사단< 慶州古蹟發掘調査團 >에서 발굴조사함으로써 무덤의 규모와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무덤은 통로인 널길< 道 >을 갖춘 돌방무덤< 石室墳 >으로 내부에는 시신< 屍身 >을 모셔 두는 주검받침< 屍床 >이 비교적 높게 마련되어 있다. 발굴조사시 수습된 유물< 遺物 >은 인물토용< 人物土俑 >, 청동제12지상< 靑銅製十二支像 >, 토기< 土器 > 등 모두 64점이었다. 이들 유물중 인물토용과 청동제12지상은 우리나라 고분 발굴사상 처음 출토< 出土 >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복식사< 服飾史 > 및 당< 唐 >나라와의 문화교류< 文化交流 >를 밝히는데 있어서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무덤의 주인공은 7∼8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신라왕족< 新羅王族 >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 용강동 평지에 있는 이 무덤은 '개무덤', '고려장'으로 불려오면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경주의 향토사학가< 鄕土史學家 >들의 모임인 신라문화동인회< 新羅文化同人會 > 회원들의 노력으로 1986년 6월 문화재연구소< 文化財硏究所 > 경주고적발굴조사단< 慶州古蹟發掘調査團 >에서 발굴조사함으로써 무덤의 규모와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무덤은 통로인 널길< 道 >을 갖춘 돌방무덤< 石室墳 >으로 내부에는 시신< 屍身 >을 모셔 두는 주검받침< 屍床 >이 비교적 높게 마련되어 있다. 발굴조사시 수습된 유물< 遺物 >은 인물토용< 人物土俑 >, 청동제12지상< 靑銅製十二支像 >, 토기< 土器 > 등 모두 64점이었다. 이들 유물중 인물토용과 청동제12지상은 우리나라 고분 발굴사상 처음 출토< 出土 >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복식사< 服飾史 > 및 당< 唐 >나라와의 문화교류< 文化交流 >를 밝히는데 있어서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무덤의 주인공은 7∼8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신라왕족< 新羅王族 >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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