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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김씨삼강정문 - 국가에서 건립한 정문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산84-2

이 정문은 충신< 忠臣 > 김충수< 金忠守 >와 그의 아들 김함< 金涵 >의 효행< 孝行 > 및 열부< 烈婦 > 두분의 행적< 行蹟 >을 높이 기려 국가에서 건립< 建立 >한 것이다. 충신 김충수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을 당하여 백의< 白衣 >로 의병장< 義兵將 >이 되어 죽산< 竹山 >에서 왜병< 倭兵 >과 접전하다 중과부적< 衆寡不敵 >으로 적에게 잡히자 같이 분전< 奮戰 >하던 아들 함이 부친< 父親 >을 구하고자 단신< 單身 > 적진< 敵陣 >에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적을 많이 베었으나 부자가 동시에 순절< 殉節 >하였다. 그뒤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39년(1606) 김함의 효절< 孝節 >을 기려 사헌부< 司憲府 > 지평< 持平 >을 증직< 贈職 >하고 효자정문< 孝子旌門 >을 내렸으며 숙종< 肅宗 > 26년(1700) 김충수의 충절< 忠節 >을 기려 사헌부< 司憲府 > 장령< 掌令 >을 중직하고 충신정문< 忠臣旌門 >을 내렸다. 지평김함공< 持平金涵公 >의 손부< 孫婦 >인 온양정씨< 溫陽鄭氏 >는 병자호란< 丙子胡亂 >을 당하여 이천< 利川 > 거마산< 巨馬山 >으로 피신< 避身 >했으나 호병< 胡兵 >의 추적< 追迹 >으로 욕을 면키 어렵게 되자 두 딸과 함께 못에 투신자살하여 순절< 殉節 >하여 정절< 貞節 >을 지키었다. 영조< 英祖 > 16년(1740)에 열부정문< 烈婦旌門 >이 내려졌다. 청주한씨< 淸州韓氏 >는 영조< 英祖 > 7년(1731)에 부군< 夫君 >인 익성< 益聖 >이 위독하여 단지수혈< 斷指輸血 > 등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나 임종< 臨終 >하니 자식없는 것은 부도< 婦道 >를 다하지 못함이라 하여 부군을 따라 순절하였다. 그뒤 영조< 英祖 > 13년(1737)에 열부정문< 烈婦旌門 >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전후< 前後 > 100여 년 사이에 절의< 節義 >가 상망< 相望 >하여 한 가문< 家門 >에서 일충신< 一忠臣 > 일효자< 一孝子 > 이정렬< 二貞烈 >이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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