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동방동 343-4
1977년 9월 취락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택지공사가 계속되던 중, 국립경주박물관< 國立慶州博物館 >에서 발굴조사< 發掘調査 >한바 9기< 基 >의 와요< 瓦窯 >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중 1기를 발굴조사< 發掘調査 >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는 1.72m로서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구축된 지하굴식등요< 登窯 >로 밝혀졌다. 번조실< 燔造室 >의 천정부< 天井部 >와 측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요실< 窯室 >과 번조실< 燔造室 >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었다. 출토와편< 出土瓦片 >은 고려시대< 高麗時代 >에 성행된 우장문< 羽狀紋 >숫키와·암키와와 연화문< 蓮花紋 >숫막새 그리고 조선시대< 朝鮮時代 >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가마바닥에서 출토< 出土 >된 건륭명< 乾隆銘 > 암막새는 폐요< 廢窯 >될 당시의 것으로 간주되어 이 와요지< 瓦窯址 >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 高麗時代 >부터 조선시대후기< 朝鮮時代後期 >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1977년 9월 취락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택지공사가 계속되던 중, 국립경주박물관< 國立慶州博物館 >에서 발굴조사< 發掘調査 >한바 9기< 基 >의 와요< 瓦窯 >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중 1기를 발굴조사< 發掘調査 >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는 1.72m로서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구축된 지하굴식등요< 登窯 >로 밝혀졌다. 번조실< 燔造室 >의 천정부< 天井部 >와 측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요실< 窯室 >과 번조실< 燔造室 >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었다. 출토와편< 出土瓦片 >은 고려시대< 高麗時代 >에 성행된 우장문< 羽狀紋 >숫키와·암키와와 연화문< 蓮花紋 >숫막새 그리고 조선시대< 朝鮮時代 >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가마바닥에서 출토< 出土 >된 건륭명< 乾隆銘 > 암막새는 폐요< 廢窯 >될 당시의 것으로 간주되어 이 와요지< 瓦窯址 >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 高麗時代 >부터 조선시대후기< 朝鮮時代後期 >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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