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파주읍 향양1∼2리 산8-2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학자인 성혼(1535∼1598)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 字 >는 호원< 浩原 >, 호< 號 >는 우계< 牛溪 > 또는 묵암< 默庵 >, 시호< 諡號 >는 문간< 文簡 >이다. 파평< 坡平 > 우계< 牛溪 > 옆에 살았으므로 학자들이 우계선생이라 불렀다. 선생은 일찍이 휴암< 休庵 > 백인걸< 白仁傑 > 문하< 門下 >에서 수학하고 17세 때 감시< 監試 > 초시< 初試 >에 합격하였으나 신병으로 복시< 復試 >를 못 치르자 과거< 科擧 >를 단념하였다. 젊어서 이미 덕망과 학문이 뛰어났고 율곡< 栗谷 > 이이< 李珥 >와 교분이 두터웠으나 학설은 오히려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을 지지하여 율곡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율곡의 문인인 조헌< 趙憲 >, 한교< 韓嶠 >, 황신< 黃愼 >, 이귀< 李貴 >, 정엽< 鄭曄 > 등이 성혼의 문인이 되었다. 그의 학생이 뛰어나 나라에서 관직을 주었으나 계속 나아가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에 세자< 世子 >의 특별한 부름에 따라 우참찬< 右參贊 >을 거쳐 좌참찬< 左參贊 >이 되었다. 후에 좌의정< 左議政 >에 추증< 追贈 >되었다.
[대중교통]
서울역에서 922번(좌석)이나 불광동터미널에서 909번(좌석)버스를 타고 문산터미널에서 하차
12번(일반) 또는 17번(일반) 버스를 타고 성혼선생묘 이정표 앞에서 하차(도보 20분 소요)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학자인 성혼(1535∼1598)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 字 >는 호원< 浩原 >, 호< 號 >는 우계< 牛溪 > 또는 묵암< 默庵 >, 시호< 諡號 >는 문간< 文簡 >이다. 파평< 坡平 > 우계< 牛溪 > 옆에 살았으므로 학자들이 우계선생이라 불렀다. 선생은 일찍이 휴암< 休庵 > 백인걸< 白仁傑 > 문하< 門下 >에서 수학하고 17세 때 감시< 監試 > 초시< 初試 >에 합격하였으나 신병으로 복시< 復試 >를 못 치르자 과거< 科擧 >를 단념하였다. 젊어서 이미 덕망과 학문이 뛰어났고 율곡< 栗谷 > 이이< 李珥 >와 교분이 두터웠으나 학설은 오히려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을 지지하여 율곡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율곡의 문인인 조헌< 趙憲 >, 한교< 韓嶠 >, 황신< 黃愼 >, 이귀< 李貴 >, 정엽< 鄭曄 > 등이 성혼의 문인이 되었다. 그의 학생이 뛰어나 나라에서 관직을 주었으나 계속 나아가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에 세자< 世子 >의 특별한 부름에 따라 우참찬< 右參贊 >을 거쳐 좌참찬< 左參贊 >이 되었다. 후에 좌의정< 左議政 >에 추증< 追贈 >되었다.
[대중교통]
서울역에서 922번(좌석)이나 불광동터미널에서 909번(좌석)버스를 타고 문산터미널에서 하차
12번(일반) 또는 17번(일반) 버스를 타고 성혼선생묘 이정표 앞에서 하차(도보 2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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